아이들 문화 갈증 '마을 도서관'에서 풀어봐∼

입력 2014-08-16 07:32:29

대구 서구 비산동 '햇빛따라'…주민들 십시일반 뜻 모아 시작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책을 읽고 있는 모습. 이화섭 기자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책을 읽고 있는 모습. 이화섭 기자
대구 서구 비산동에 위치한
대구 서구 비산동에 위치한 '마을도서관 햇빛따라'의 모습, 이화섭 기자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인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인 '다락방'. 이화섭 기자

대구 서구 비산동 북비산네거리 근처에 위치한 '마을도서관 햇빛따라'의 풍경은 다른 도서관과 사뭇 다르다. 창가에 놓인 책상에서 책을 읽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앉은뱅이 책상이 놓인 공간에는 선생님이 3명의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아이들은 동화구연이 끝나자 '다락방'에 모여 종이접기 책을 펴 놓고 종이접기 놀이를 시작했다. 일반적인 도서관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마을도서관 햇빛따라'(햇빛따라)는 문화시설이 부족한 비산동 주민들의 문화에 대한 열망을 조금이라도 해결해보기 위해 주민들이 뭉쳐 만든 작은 도서관이다. 실제로 대구 서구 안에서도 비산동 일대는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속한다. 서구 전체의 문화시설이 부족한 데다 이마저도 평리동, 중리동, 내당동 등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서부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거나 모처럼 서구문화회관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가고 싶어도 그곳으로 바로 연결해주는 버스가 없다. 오죽하면 이 동네의 숙원사업 중 하나가 "서부도서관과 서구청이 있는 평리동 쪽으로 바로 가는 버스노선이 하나 생기는 것"이라 할 정도이겠는가.

햇빛따라는 비산동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서구문화복지센터 회원들과 동네 주민들이 함께 기금을 모아 2009년 7월 문을 열었고 이달 1일 장소를 확장'이전했다. 처음에는 가입회비와 후원금으로만 운영하다가 올해 들어서야 대구시와 서구청으로부터 책 구입비 약 400만원을 지원받기도 했다. 하루 평균 15~30명의 동네 주민과 어린이들이 햇빛따라에서 책을 읽는다. 처음 책을 마련할 때는 기증과 출판사들의 후원을 받았다. 그러다가 후원금 등을 통해 차츰차츰 신간을 늘려 처음 시작할 때 4천 권이었던 장서가 현재는 1만 권가량으로 늘어났다.

'놀 만한 곳'이 대구 시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이 동네 어린이들에게 햇빛따라는 도서관이자 놀이터의 역할을 한다. 햇빛따라 김은자 관장은 "이 동네에 사는 부모 중에는 맞벌이를 하는 분들이 많아 학교나 학원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이 집에 홀로 있을 때가 많다"며 "햇빛따라는 그런 아이들에게 좋은 쉼터이자 놀이터가 된다"고 말했다. 자녀를 학원에 보낼 형편이 안 되는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도서관에 보내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동네 아이들이 도서관에 모인다. 도서관에서 친구를 사귀고 함께 놀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성을 익히게 된다.

최경임(43) 씨는 "아이들과 외출할 때면 아이들이 제 옆에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하고 남들과 어울리는 것도 어려워했는데 햇빛따라에 나오면서 다른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봤다"며 "아이가 점점 밝아지고 적극성을 띠는 모습을 보니 이곳이 인성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햇빛따라는 이곳을 찾는 아이들을 위해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번 여름방학 기간 동안 햇빛따라는 '독서신문 만들기' '양말인형'머리핀 만들기' '영어문법 배우기' '영어그림책 읽어주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프로그램 참가비용은 무료이거나 1만원 안팎으로 저렴하다. 프로그램은 햇빛따라의 근무자나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진행된다. 자원봉사자들 대부분은 지역 주민인 경우가 많은데 햇빛따라에 아이들을 데려온 학부모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자원봉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번 여름방학 때 진행된 '영어문법 배우기'와 '영어그림책 읽어주기'는 지역의 고등학생들이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참가해 큰 도움이 됐다.

동네 어린이들이 모이면서 아이들의 학부모들도 자연스럽게 이곳에 모인다. 그러다 보니 햇빛따라는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이 되기도 한다. 맞벌이를 하지 않는 가정의 어머니들은 아이들과 함께 온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있을 때 어머니들은 '어른들을 위한 강좌'에 참가하기도 하고 옥상 휴게실이나 도서관에 딸린 주방에서 수다 삼매경에 빠질 때도 있다. 어른들도 햇빛따라가 동네에서 가깝고 문턱이 낮아 좋아한다. 김영미(43) 씨는 "큰 도서관은 1층 로비부터 조용해야 할 것만 같은 위압감이 있는데 이곳은 조금 시끄러워도 용서가 되는 곳"이라며 "아이들도 어른들도 편하게 찾을 수 있어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동네 주민들이 모이니 이야기 주제도 동네 이야기나 아이들 교육 이야기로 흘러간다. 일부 명문학군 주변 카페에 모인 어머니들이 이야기한다는 "어느 동네 어느 학원이 좋다더라"거나 "우리 아이가…"로 시작하는 자식자랑으로 인한 묘한 긴장감은 없다. 김민경(35) 씨는 "도서관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매일같이 만나다 보니 어머니들끼리 모두 친하다"며 "만나면 어떻게 사는지, 햇빛따라가 쉬는 날에 뭐하고 살았는지 이야기하다 보면 친해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햇빛따라는 단순히 책 읽는 곳이 아닌 지역 공동체를 만드는 공간으로 기능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그리고 아직도 부족한 비산동 일대의 문화시설에 대한 대안으로의 역할을 위해 노력 중이다. 김은자 관장은 "현재 이 동네 청소년들이 갈 만한 공간이 부족한 실정이라 이 부분을 해결하는 것을 고민 중"이라며 "도서관이라는 공간의 운영과 함께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도 같이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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