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곳밖에 없다는 이 비석 앞에서, 우리가 평소 쉽게 잊고 살아가는 게 얼마나 많은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경북 청도는 그동안 '청도 소'라는 독특한 브랜드가 뿌리를 내려왔습니다. 해마다 소싸움 축제를 앞두고 서울 명동에서 황소를 몰고 다니며 홍보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나라 안팎에서 많은 사람들이 청도를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이제 '청도 소' 하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지요. 이렇듯 '소'로 유명한 경북 청도의 팔조령 기슭에서 우리를 참 미안하고 부끄럽게 하는 '비석' 하나를 만났습니다. 소나무 숲 아래 호젓하게 서 있는 이 비석은 '우령비'(牛靈碑)입니다. 소의 영혼을 위로하는 비석이지요. 옆에 놓여 있는 안내문을 읽다 보니 비석이 이곳에 서 있게 된 사연을 조금 알게 됐습니다.
예부터 잠업이 성행했던 경북 상주에서는 나비가 되어 날지 못한 채 고치만 남기고 죽은 누에의 영혼을 달래는 '잠령비'(蠶靈碑)를 세워놓고 잠업인들이 모여 위령제를 지내왔다고 합니다. 해마다 5월 초, 새끼누에가 부화할 때 첫 뽕잎을 주는 날에 올리는 전통제례의식 '잠령제'(蠶靈祭)입니다. 잠업의 풍년 기원과 동시에 인간을 위해 한 생애를 온전히 다 바친 누에의 영혼을 달래주는 경건한 의식입니다. 옛 선조들은 이렇게 누에고치 같은 미물에게도 그 희생에 고마워하고 미안해했을 정도로 마음이 참 곱고 선했습니다. 생명의 존엄에 대한 각성입니다.
소는 인간이 먹는 육식의 대표적인 대상이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소가 도축장에서 수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인간에게 먹거리를 제공하고 죽은 소들의 영혼을 달래는 사찰을 짓기로 발원한 어느 스님은 6년 전 이곳 소의 고장 청도군 이서면 팔조령 초입 양지 바른 곳에 아담한 도량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단청을 곱게 입은 골기와 지붕의 법당은 없습니다. 이곳 스님은 겉치레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고 합니다. 우령비 앞에 선 우리들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지나다 보면 이곳이 사찰이라는 걸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스님은 앞으로 이곳 '우령비'에서 해마다 가을에 한 번씩 대규모 소 위령제를 지내게 된다고 합니다. 물론 평소에도 도축장 관계자 및 축산업, 식육식당, 피혁제품 관계자 등 육류 도축 유통 소비와 관련된 사람들이 종교를 초월해 개별적으로 이 비석 앞에 찾아와서 경건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기도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 세상에 소의 희생으로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처럼 쇠고기 생산 유통, 불고기식당 주인, 쇠고기를 좋아하는 일반 육류소비자 등 '소' 덕분에 먹고사는 사람들이 '소'에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면서 정성껏 제사를 올리기 위해 이곳 우령비 앞으로 찾아든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마음을 한데 모아서 일 년에 한 번 장엄한 소 위령제를 올린다는 것입니다. '소싸움축제' 브랜드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경북 청도에서 우령제(牛靈祭)라는 이름으로 장엄한 '소 사랑 한마당'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스님은 강조합니다. 이 소사랑축제는 비단 '소'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돼지, 닭 등 가축은 물론 인간을 포함한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귀함과 소중함을 일깨우는 건강한 '생명존중운동'으로 승화시키겠다고. 두 눈에 핏발 선 싸움소들이 흥분하는 소싸움의 고장 '경북 청도'는 앞으로 어쩌면 평화로운 생명사랑운동의 숭고한 메카가 될지 모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곳 우령비는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소중한 가르침을 주게 될 것입니다.
우령비를 떠나오면서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을 선하게 일깨워 주는 참 고마운 곳이구나.'
이신엽/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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