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형사사건이든 민사사건이든 법정에서 준엄한 법의 심판 앞에 선 사람이라면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딱딱한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다. 헌데 그 싸늘한 법정 벽면에 얼어붙은 심성을 녹이는 예술작품 한 점이 문득 눈에 들어온다면 어떨까?
이른바 '예술로 소통하는 법정'(이하 예술법정)이 올 3월 창원지방법원에 등장, 재판부와 당사자 간 부드러운 소통과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많이 기여하는 고품격 사법서비스가 구축돼 화제다. 이 예술법정을 전국 최초로 시도한 주인공은 올 2월 부임한 강민구(56) 법원장이다.
"이달 5~7일 재판 휴정기를 맞아 시민들에게 예술작품을 개방, 관람할 수 있도록 한 '오픈 코트'(Open Court) 행사에 많은 시민들이 찾아 성황을 이루며 인기가 높았습니다."
경북 선산이 고향인 강 법원장의 예술법정 아이디어는 평판사와 대구지법 민사합의부 재판장 시절의 경험이 단초가 됐다. 2003년 성남지원에서 형사재판 선고를 앞두고 긴장감에 숨 막혀 하던 피고인과 그 가족들에게 잠시나마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음악을 들려줌으로써 당사자들이 열린 마음으로 판결에 승복했고, 대구지법에선 모녀간 분쟁을 재판장실에 불러놓고 '회심곡'을 들려줌으로써 서로 눈물을 흘리며 조정에 합의했던 것.
"원래 재판이란 서로 더 잘 알수록 더 좋은 판결을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나라 근대사법 120년 역사상 최초인 예술법정 역시 부드러운 법정 환경에서 당사자들이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자 올 3월 예술품 설치 사업을 시작했고 의외로 지역의 많은 예술인이 취지에 동조해 6월 말 끝낼 수 있었습니다."
현재 예술법정은 창원지법 16곳 법정을 비롯해 부산고법 창원부 법정 4곳, 조정실 10곳 및 법원 본관과 로비 등에 115점의 그림과 사진이 설치돼 있다. 그중엔 추상화의 대가 고 전혁림, 오체투지의 작가 한혜경 작품을 필두로 경남 남해서 횟집을 운영하는 자칭 '촌놈 사진작가' 박대엽 작품과 법원 사진동호회 아마추어 작가들의 작품도 있다. 특히 창원지법 212호 법정엔 민사부 최아름 판사의 모친 고 박덕기 화백이 생전에 자신과 아들을 모델 삼아 그린 '어머니와 아들'이란 작품이 걸려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작품은 다양한 통로를 통해 확보했습니다. 최초 소년법정엔 지인이 보내준 사진작품을 내걸었고 이를 계기로 주변에 카카오톡과 SNS로 도움을 요청했더니 동창, 처가 등에서 호응을 해주었죠."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며 고교시절 사진반 특별활동을 한 강 법원장은 소년법정을 예술법정으로 완성한 후 직접 유튜브에 직원이 만든 '창원법원 예술법정 시즌1'을 동영상으로 게시했다. 또 지역 작가들에게도 취지를 설명했고 어떤 이들은 소장품을 무상 대여해주기도 했다.
"전국 첫 예술법정을 진행하면서 지방도 수도권 못지않게 앞서가는 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법원 안에 생겨났으며 법관들도 달라진 법정 분위기를 실감하고 차분해진 당사자들이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최근 창원지방법원엔 '다른 법원으로 전파됐으면 한다' '법정이란 단어에 부담을 없애주는 역할을 한다' '풍경화가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사진이 참 아름답다' 등의 시민 의견이 잇따르고 있다.
"리더의 덕목은 다양한 위상 변화를 통해 막힘없는 소통에 있습니다. 법정도 다양한 영역이 서로 융합해 발전해야 합니다. 예술법정이 모든 법원에 확산돼 소통과 명품재판에 이바지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강 법원장은 사법시험 제24회, 사법연수원 14기생으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와 한국정보법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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