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어느 노인대학에 강연을 갔을 때였다. 칠순의 어르신들이 재밌는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중 분홍빛 카디건을 곱게 두른 어르신이 쉰이 넘은 아들이 아직도 자기를 대할 땐 손을 꼭 잡고 이야기한다고 자랑이 한창이셨다. 아들은 연로하신 어머니께 과일을 드릴 때도 치아가 상할까 얇은 종이처럼 포를 뜨듯 해서 드린다는 것이다. 또 외출에서 돌아올 때도 어머니 좋아하는 떡과 과자를 사다 나르고 용돈도 수시로 주머니에 살짝 넣어 준다는 애틋한 이야기였다. 필자가 듣기에도 효심 가득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때 옆에서 열심히 듣던 어르신이 '어찌 그런 효행을 하는 아들이 다 있을까'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사연인즉, 자식들은 아직도 늙어버린 자기를 힘이 펄펄 나는 젊은 어머니 취급을 하며 이것저것 도와달라 조르며 무리한 요구만 하는 등 보살펴주기는커녕 늙은 종 부리듯 한다고 울먹이셨다.
이 두 어르신의 차이가 뭘까. 비슷한 연세에 어떤 어르신은 자식들에게 하염없이 어린아이처럼 보호받아야 할 어머니로 대접받고 사랑받아 노후가 화평하기 그지없다. 반면 어떤 어르신은 여전히 끊임없이 일하는 노인으로 취급받아 자식들의 가사도우미 역할 요구나 식사며, 살림이며 무엇이든 젊은 시절 해오던 강한 어머니 역할이 계속 요구된다. 그래서 어르신이 보호받고 관심 받기보다는 도리어 젊은 자식 가족을 위해 끊임없이 챙겨주어야 하는 고단한 삶을 되풀이해야 하는 외로움을 갖게 되는 것이다.
언뜻 보면, 자식을 잘 둔 어르신은 극진한 대접과 관심을 받는 것이고, 자식을 잘 못 둔 노인은 자식들의 살가운 대접을 결코 못 받는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어르신들의 세세한 얘기를 끝까지 들은 덕분에, 효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지혜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젊어서부터 강력한 에너지로 자식을 자기의 뜻대로 이끌어가는 어머니는 늙어서도 자식 눈에는 여전히 강하고 무서운 어머니로 보여 보호해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홍빛 카디건을 두른 어르신처럼 어머니는 연약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자식을 이끌어가야 한다. 연약한 모성이 노후에 아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에 더 적절하기 때문이리라.
김미애 대구과학대 교수 대구복지상담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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