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검정 천 쓴 박수무당 중얼대다 칼 휙~… 소년들은 허공에 옥수수 뿌려
◆무아의 몸짓 속으로
아잔(큰스님, 목사, 무당)의 의자는 특별하게 제작되었다. 외형은 1960, 70년대 우리의 소도시 허름한 골목길 어디쯤에서나 보았을 법한 것이다. 우리의 할머니와 아버지들이 여름날 더위를 피하기 위해 동그란 종이 부채를 쉬엄쉬엄 부치며 한가하게 앉아 아이스께끼라도 사 먹던, 기다란 나무 의자를 닮았다. 땅바닥에 깔아놓은 자리 위에는 13세와 14세에 결혼한 소녀들이 두 명 섞여 있고, 그중 14세 소녀는 지금 16세가 되었으며 한 살 된 아기를 안고 있다.
9시 20분쯤 되자 의자에 앉아 있던 아잔의 얼굴에 마치 사형장으로 가는 죄수처럼 검정 천이 씌워진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가 두 손을 세차게 흔들며 땅바닥을 구르기 시작한다. 심하게 들썩거리는 나무 의자의 네 다리는 땅속 깊숙이 구멍을 파 박고, 그것도 안심이 안 되었는지 구멍 사이에 다시 나무 조각까지 박아 고정했다. 그의 양손에는 두꺼운 철사로 만든 동그란 모양의 쇠도롱테가 들려 있는데, 그 안에는 쇠 장식들이 들어 있어 구를 때마다, 심한 쇳소리를 낸다. 환갑을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의 동작은 역동적이다. 마치 자신의 힘이 아닌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린 듯 그의 몸이 무아지경에 빠졌다. 자손들도 그 뒤에서 더욱 세차게 세 개의 꽹과리를 번갈아 치고, 아잔 옆에서 시중을 드는 마을 사람도 분주히 향을 간다. 아잔의 부인도 거의 반은 무당인 듯하다. 그녀의 눈빛은 아잔보다 더 형형하며 뒤에서 입에 물을 머금어 수시로 허공에 뿌리더니, 그 물그릇을 다시 제단에 갖다 놓는다. 제물을 놓은 탁자나 의자는 다른 사람의 손이 닿으면 안 된다고 한다.
돼지 한 마리로는 부족한지 밖에서는 방사해서 키운 돼지 새끼 한 마리를 청년들이 몬다. 다리라도 잡는가 싶더니 여러 명이서 순식간에 넘어뜨리고 쏨깽이 그 위에 날렵하게 올라타 네 다리를 묶는다.
한 시간쯤이나 지났을까, 아잔이 중간중간 구르는 것을 멈추고 족히 50, 60㎝나 되는 의자를 단숨에 펄쩍 뛰어오르더니 얍, 하고 기합을 넣으며, 링을 가슴 높이까지 올린다. 그 동작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마치 접신이라도 하듯 누군가 대화를 나누다가 웃기도 한다. 끝없이 접신을 시도하며 점괘를 보는 듯하다. 그 모습이 한국의 산천에서 작두를 타던 박수무당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그 옆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계속해서 하얀 종이에 동그란 것을 대고 나무로 탁탁 내리쳐 부적을 만들어 낸다.
이제 아잔의 굿이 막바지에라도 다다른 듯 가족들이 부산하게 모인다. 10대 소년들도 얼른 물그릇과 옥수수 통, 향을 집는다. 아잔의 옆에서 시중을 들던 사람이 아잔의 양쪽 겨드랑이 안쪽으로 손을 끼고 그의 몸은 만지지 않는다. 갑자기 아잔이 땅에 꽂혀 있던 긴 칼을 빼더니 다시 나무 의자 위로 펄쩍 뛰어오르는데,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 동작에 생동감이 있다. 검정 천을 쓴 채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문을 향해 칼을 던지는데 사람들이 맞으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누군가 얼른 달려가 칼을 주워다 준다. 그 동작이 몇 번이나 반복되는가 싶더니 그대로 뛰어 내려와 의자에 풀썩 주저앉는다. 허리라도 다치면 어쩌나, 걱정이 들 정도로 의자가 휘청거린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의 꽹과리 소리는 더욱 높아간다. 소년들도 다시 옥수수를 뿌리고 물을 입에 머금어 허공으로 내뿜으며 일순, 부엌 안은 난장판이 된다. 마치 신이라도 내리는 듯 박수 부인도 같이 펄쩍펄쩍 뛰며 옥수수를 허공에 뿌리고 기합까지 넣는다. 아잔이 다시 도롱테를 던지니 또 얼른 가서 주워온다. 우리와는 달리 옆에 서 있는 마을 사람들은 경건하거나 그런 표정들은 찾아볼 수 없다. 그냥 떠들고 같이 웃으며 단지 그 상황을 즐기는 것 같다. 아잔의 동작이 커질수록 부인의 동작도 따라 커지며, 이번에는 무슨 나무 뭉치 같은 걸로 땅을 치며 뛰는데, 역시 육순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한참이나 칼을 던지고 주워오기를 반복하는데, 어느 지점에 이르니 단단히 신이라도 내린 듯하다. 한참이나 혼자 무슨 말인가를 지껄이며 간간이 웃는다.
◆제천 의식인가, 무지인가?
그 사이 사람들이 밖에 있던 돼지를 들고 와 아잔 뒤에 놓는다. 아잔 부인이 하얀 털실을 돼지 목에 헐겁게 묶더니 그 줄로 가족들도 동그랗게 묶고 다시 벽에 붙어 있는 조그만 제단으로 가서 묶는다. 10대 청년이 커다란 칼을 들고 순식간에 돼지 목을 찔러 피를 받고 누군가 앞에 있던 부적을 가져와 불을 붙여 그 아래 놓는다. 이번에는 아잔 부인이 액운이라도 끊어내듯 털실을 칼로 자르고 재단에 있던 칼 앞부분 모양의 나무를 가져오더니, 아래쪽을 돼지 목에 대고 피를 묻힌다. 이어 털실 안에 있던 가족들 등 뒤에 3번씩 찍고, 엄마의 등에 있는 아기들까지 빠짐없이 찍는다. 나무 옆부분에도 피를 묻혀 어른들 발바닥에 다시 찍고, 자리를 정화하는 의식인 듯 물을 머금어 허공에 또 뿜는다.
두 시간이 넘도록 똑같은 템포로 뛰는데, 아잔의 힘만은 아닌 것 같다. 똬리를 틀고 목을 잔뜩 치켜든 코브라처럼 신기가 잔뜩 올라 있으며,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둘째 엄마 큰아들 스낭과 딸이 하얀 부적을 세 개 땅 위에 놓더니 아이의 옷까지 올려놓고 땅바닥에서 엎드려 큰절을 한다. 그 뒤에서 10대 소년이 닭을 한 마리를 가져오더니 단번에 큰 칼로 자르고 피를 받는데, 섬뜩하다. 부적에 불을 붙여 그 아래에 갖다 놓는다.
인간의 오랜 제례 의식 속에 꼭 있어야 하는 살아있는 제물들. 더 오랜 고대로 올라가면 소녀 심청이나, 에밀레 종의 울음처럼 어린 아이들까지 바치던 살풍경(殺風景), 인간의 무지는 의식이 진화되면서 그런 상황은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의 옛이야기 속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것들이다.
윤재훈(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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