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의리

입력 2014-08-11 10:40:53

멜리나 메르쿠리. 1980, 90년대 두 차례나 그리스 문화부 장관을 지낸 배우이자 가수다. '일요일은 참으세요'(1960년)와 앤서니 퍼킨스와 호흡을 맞춘 '페드라'(1962년)로 우리 영화 팬에게도 널리 알려진 스타다.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명성을 얻은 그가 한때 그리스 바깥을 떠돈 망명자였다는 점도 웬만한 팬이라면 알고 있는 사실이다.

1967년 그리스에서 군사 쿠데타가 터지자 메르쿠리는 저항운동에 뛰어들었다. 군사정권은 그를 추방했고 시민권마저 박탈했으며 심지어 암살 공작까지 벌였다. 1974년 군사정권이 무너진 후 귀국해 정치에 본격 입문했는데 1981년 파판드레우 사회당 정권은 그를 문화부 장관에 임명했다.

장관 재임 시절 그의 행보는 눈부시다. 19세기 초 오스만제국이 그리스를 점령하던 때 영국이 무단 반출한 '엘긴 마블스'(Elgin Marbles'파르테논 신전 조각상) 반환 운동을 펼치고 '유럽 문화 수도' 아이디어를 제안해 1986년 아테네가 첫 유럽 문화 수도로 지정되면서 그리스 역사와 문화를 널리 알리며 관광 진흥에도 큰 역할을 했다. 1994년 메르쿠리가 세상을 떠나자 그리스 정부는 기념우표를 발행하고 조각상까지 세웠다. '페드라'에서 부른 노래처럼 국민 배우로, 정치인으로 그리스인의 기억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아가피 무'(Agapi mou'내 사랑)가 된 것이다.

이처럼 연예인에서 출발해 정치인 등 공직에서 성공한 사례는 많다. 미국민의 인기와 존경을 받은 레이건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상당수가 호평을 받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 연예인의 공직 진출 또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경우가 드물다. 이명박정부 때 문화관광부 장관이 된 유인촌 씨의 경우 산하 기관 인사나 재산 문제 등으로 구설에 올라 이미지를 구겼다.

최근 방송인 자니 윤 씨의 관광공사 감사 임명이 구설에 올랐다. 대선 때 재외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공적에 대한 '보은 인사'라는 비판이 거세다. 관광과 연관된 경력이 전무하고 팔순을 앞둔 연예인이라는 점에서 공기업 감사라는 직함이 어색하다. 그의 뛰어난 유머 감각이 감사직에 얼마만큼 위력을 발휘할지 알 수는 없지만 결코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의리가 미덕으로 간주되는 사회다. 그러나 순리를 벗어난, 무조건적인 의리는 오히려 독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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