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 화두인 시대다. 소통의 부재는 화합을 해치고 극단적인 갈등을 야기하며 사회적인 비극을 초래한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이뤄지는 의사소통의 중요성은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의사소통이 잘 이뤄지면 치료 결과가 좋게 나타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결과도 나쁘고 의료 소송 등의 2차 문제도 발생하게 된다.
몇 년 전 연수차 일본에서 10개월가량을 살았던 적이 있다. 평생 일본어를 모르고 살다가 급하게 준비를 하면서 아주 기본적인 의사소통만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어느 날 목이 아프고 열이 나 집 근처 의원을 찾았다.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 일본인 원장과 영어, 일본어 둘 다 능숙하지 않은 내가 어렵사리 의학용어를 써가면서 면담을 마치고 처방약을 받아들었다. 그런데 원장님이 약에 대해 뭔가를 설명하는데 그 일본어 단어를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원장님도 그 말의 영어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지 의사와 환자 모두 끙끙대며 묘한 적막감에 빠질 찰나, 마침 대기하고 있던 환자 중에 오래전에 일본에 정착한 외국인이 단어를 영어로 설명해줬다. "항생제라서 냉장고에 보관하시라는데요." 냉장고라는 간단한 단어를 못 알아들어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외국뿐만 아니라 같은 말을 쓰는 의사와 환자 간에도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존재한다. 같은 말을 다르게 이해하거나 애초에 서로 입장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의과대 내에서 학생들에게 의료인문학의 한 부분으로 의사소통에 대한 강의도 하고 있다.
교과서에는 환자와 좋은 의사소통을 하려면 의사가 먼저 '굿 리스너'(Good Listener)가 돼야 한다고 나와 있다. 환자의 말과 상황을 잘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남들과 소통을 잘하고 싶어하면서도 얼마나 타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했는지, 혹시 내가 하고 싶은 말 만 하고 충분히 소통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나 자신부터 반성할 일이다.
환자들이 병원에서 갖는 불만 중의 하나가 '의사가 내 말을 충분히 들어주지 않는다'일 것이다. 오죽하면 '30분 대기 3분 진료'라는 말이 있을까. 의사 개인이나 병원의 문제도 있지만 사회경제적인 시스템 내에서 여러 가지 외부적인 환경이 의사와 환자 관계를 손상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의사가 약이다'라는 말이 있다. 환자 중에는 의사가 얘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해하고 치료 효과를 보이는 이들도 있다. 내 아픔을 들어주고 같이 공감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의사와 환자 간에, 선생과 학생 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세대와 세대 간에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부터 건강한 사회로의 첫걸음은 시작된다.
윤창호 경북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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