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취업 공부할 때, 저는 땅을 배웁니다"…곽영식 씨

입력 2014-08-09 08:00:00

청년 농부 곽영식 씨가 아버지의 채소 비닐하우스에서 해맑게 웃고 있다.
청년 농부 곽영식 씨가 아버지의 채소 비닐하우스에서 해맑게 웃고 있다.

곽영식(25) 씨는 '하반기 공채'를 준비하는 또래들과는 조금 다른 하루를 보내고 있다. 트럭을 몰고 채소를 납품하는 마트 두 곳을 돌아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채소가 싱싱한 상태로 납품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납품업체 순방이 끝나면 대구시 동구 미대동에 위치한 밭으로 향한다. 채소가 자라는 상태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필요하면 친환경 농약을 친다. 오후에는 도서관에서 과수 관련 월간지를 보며 곧 있을 과수원 개원을 준비한다. 곽 씨는 25세 청년 농부다. 곽 씨에게는 또래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가 넘친다.

◆기계공학도에서 농업인으로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곽 씨의 꿈은 우주항공 분야의 기술자가 되는 것이었다. 곽 씨는 07학번으로 영남대 기계과에 입학했다. 대부분의 남학생이 그렇듯 1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또래들과 비슷한 삶을 살던 곽 씨는 제대 후 조금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제대를 하자 아버지는 수원에 있는 aT농식품유통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아볼 것을 권유했다. 곽 씨가 아버지의 채소밭을 물려받아 같은 농업인이 되기를 원했던 마음에서였다. 곽 씨는 '교육만 받아보자' 하는 마음이었지만 교육이 끝날 때쯤, 영식 씨의 마음은 농사일로 기울어 있었다. 아버지가 일궈놓은 터를 기반으로 농사를 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는 한국농수산대학에 11학번으로 다시 입학했다.

◆농업의 매력에 빠지다

농사를 선택한 길에서 흔들릴 때도 있었다. 곽 씨는 한국농수산대학에 입학하고 6개월 동안 고민했다. 선택하지 않은 기계공학도 삶에 대한 궁금증과 갓 들어선 '농사'라는 길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 갔다. 곽 씨는 '1년 동안 농사 공부에 집중하자'고 다짐했다. 공부에 열중한 1년이 자신의 인생에 결코 해가 되진 않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2학년이 되던 해, 의무적으로 나가야 했던 포도 농장 실습에서 곽 씨는 농사로 마음을 굳혔다. 농사의 장점들이 곽 씨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장점은 다름 아닌 '삶의 여유'였다. "농사일은 '농번기' 때가 가장 바빠요. 새벽 4시에 일어나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일을 해야 했어요. 그때는 말 못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지나고 보니 힘든 건 길어야 딱 한 달이더라고요. 일 년 중 딱 한 달만 힘든 일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어요.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다'고 느꼈죠."

3년간의 대학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아버지의 채소 농사를 돕고 있다. 곽 씨는 농사짓기로 선택한 일을 더는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회사일에 치여 스트레스받고, 잦은 회식에 몸이 망가지는 주위 친구들을 보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스스로 칭찬해주고 있다. 그는 "제가 농사일을 한다고 하니 처음에는 머리를 갸우뚱하던 친구들도 이제는 진심으로 부러워한다"며 웃었다.

◆신세대 농부를 지향하다

곽 씨는 아버지가 채소 농사를 지어온 것과는 다르게 과수 농사를 선택했다. 1년 365일 밭에만 매달려야 하는 채소 농사는 곽 씨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곽 씨는 "어릴 때부터 늘 밭일에만 몰두하시는 아버지를 봐서 그런지, 겨울에는 쉴 수 있는 과수 농사를 하고 싶었어요. 먹고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의 질도 고려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아버지와 같은 직업을 택했지만 아버지의 삶과는 조금은 다른 삶을 꿈꾸는 것이다.

곽 씨는 10월에 개장할 포도 농장 생각에 들떠 있었다. 개장할 때는 다른 때보다 일이 두세 배나 더 바쁘기에 농수산대학 동기들의 일손을 빌리기로 했다. 곽 씨는 "함께하는 즐거움이 농사일의 또 다른 기쁨"이라며 자랑했다. 그는 "일단 한 명은 섭외했는데 다른 한 명은 아직 소식이 없네요. 9월에 그 친구 과수원에 가서 사과 수확을 도와주며 설득해봐야겠어요"라며 즐거워했다.

◆젊은 피가 끊긴 농어촌

대구경북 농어촌 인구는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지만 청년들에게 농촌은 여전히 쉽게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곳이다. 미국, 호주, 유럽연합(EU) 등 농수산 강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대외 개방에 대비해 전략적으로 젊은 인력을 양성하는 일이 시급하다.

농가 인구는 해마다 줄어드는 동시에 고령화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농가 인구는 284만7천435명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2.2% 줄어든 수치다. 대구경북 지역 농가 인구도 전체적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대구경북 농가 인구는 50만9천409명으로 1년 전 51만6천922명에 비해 1.5%가 줄었다.

농가 인구 중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에 가깝다. 전국 농가 인구 중 70세 이상이 26.5%를 차지했고 60대가 21.3%, 50대가 20.0%로 집계됐다. 농가 경영주 역시 70세 이상이 43만 가구로 전체의 37.7%에 달했고, 다음으로 60대가 29.6%, 50대가 23.4% 순이었다.

대구경북 농가도 마찬가지다. 대구경북 전체 농가 인구 중 70대 이상이 28.3%, 60대 이상이 22.6%, 50대 이상은 20.4%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20대와 30대는 전체 농가 인구의 8.4%에 그쳤다. 100명 중 51명이 60대 이상이고 8명이 20, 30대인 셈이다.

2030세대가 농촌으로 선뜻 진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농사일에 대한 사회적 인식 탓이 크다. 대구시 농업기술센터 인력육성담당자는 "농사일이라고 하면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라 생각해 젊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경향이 많다"며 "또 농촌에 기반이 있어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유한 땅이 없어도 농사를 지을 방법이 있다. 한국농어촌공사 농지은행에서 땅을 임대해 농사를 지으면 된다. 농지은행은 임대차가 허용된 농지와 노동력 부족으로 농사를 짓기 어려운 사람들의 농지를 임대수탁 받아 농지를 임대해주는 사업이다. 특히 2030세대는 우선 선정 대상자이기 때문에 보다 쉽게 농지를 임대받을 수 있다.

농업을 당장 시작하기 부담스럽다면 교육을 받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구시 농업기술센터에서는 1년에 한 번 귀농 교육을 제공해 농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 있다.

글 사진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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