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 건축기행] <32>공공디자인사업 통해 재생, 동성로

입력 2014-08-09 08:00:00

車에 뺏겼던 거리, 대구시민에 돌아오다

공공디자인사업은 동성로에 대구읍성 성벽 높이의 가로등을 설치하고 가로수를 심어 친환경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공공디자인사업은 동성로에 대구읍성 성벽 높이의 가로등을 설치하고 가로수를 심어 친환경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부족한 문화적, 예술적인 프로그램들을 보완하면 동성로는 가장 대구다운 요소를 담은 가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부족한 문화적, 예술적인 프로그램들을 보완하면 동성로는 가장 대구다운 요소를 담은 가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정호 경북대 건축학부 교수
이정호 경북대 건축학부 교수

도시에서 명품으로 느껴지는 가로가 하나쯤 있다면 참 멋있는 도시임에 틀림없다. 세계적으로 각 도시를 대표하는 유명한 가로라 하면 대체로 명품제품을 파는 숍과 이름난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늘어서 있는 거리를 상상하게 된다. 예를 들면 파리의 샹젤리제, 뉴욕의 52가 혹은 브로드웨이, 동경의 오모테 산도 등이 있다. 그러나 이 가로들은 어느 날 갑자기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이미 중세시대 도시계획에 의해 중요 건물과 함께 오랜 세월동안 조성되어 온 것이다. 길이나 폭의 차이는 있지만 자동차와 사람들을 위한 기능성과 많은 사건이 농축된 역사성을 가지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세계인들에게 알려진 명품 가로가 된 것이다.

◆100여 년 도심 발달사 고스란히 담긴 역사적 장소

동성로는 사람의 길이며 사람들에 의한 길이며 또한 사람을 위한 길이다. 그 길은 100여 년간 대구 도심의 발달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적 장소이다. 1907년 일제강점기 때 일제 앞잡이인 박중양이 대구읍성을 허물면서 길이 되었고, 대구읍성 동쪽 부분 성벽 자리로 진동문, 동장대, 동소문이 있던 곳이어서 동성로란 호칭이 된 것이다. 현재 감영공원을 중심으로 둥글게 에워싸는 형태인 서성로, 북성로, 남성로란 이름과 마찬가지로 과거 대구읍성의 성벽이 허물어져 지금의 길이 된 것이다. 가슴 아픈 탄생의 역사가 있는 가로다.

동성로가 처음 길이 될 때는 대구역에서 직선으로 난 신작로인 중앙로의 뒷길이었다. 자연히 마차나 자동차길이 아닌 걸어다니는 길이었다. 그 폭은 적당하고 길이는 900m로 짧지만 수많은 성 안팎의 골목길과 연결되어 오리무중이면서 사통팔달로 통하는 거미집 같은 가로 형상이었다. 이처럼 무계획적으로 만들어져 오히려 다양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도심가로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대구의 4성로는 가로 구성체계가 매우 독특해서 그 자체가 명품으로서의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하겠다. 우리는 여태껏 흙속의 진주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대구읍성이 철거된 지 100년이 되던 해인 2007년 문광부, 대구시, 중구청과 전문가 및 시민단체들이 함께 시행한 동성로 공공디자인 개선사업은 우리나라의 지방 도심에 새로운 도시 가로의 모델을 만드는 시도가 되었다. 대우빌딩에서 한일극장까지의 790m와 대구백화점을 거쳐 중앙치안센터까지의 110m, 전체 약 1㎞ 길이는 지방 최초의 가로 공공디자인 사업 구간이었다. 가로 공공디자인사업은 단지 건축환경을 개선하고 간판을 정비하여 가로를 변화하는 일만이 아니다. 가로에 담긴 역사를 생생하게 살리고 개인의 추억과 기억을 소중하게 재생하며 가로만의 정체성을 가지게 하는 동시에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장소를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로공간이 개인의 특별한 장이 되고, 서로 간의 관계를 만드는 보편적 장으로 발전되어 시민들이 자부심을 갖고 공유하는 공공공간이 될 때 그 도시만의 정체성과 함께 명품 가로로 탄생되는 것이다. 도심의 대표 가로는 그 도시의 얼굴로서 도시민의 삶을 담는 그릇이고 도시의 품격을 나타내는 공간이다. 그래서 거리의 주인은 건물이나 자동차, 거리 시설물이 아니라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동성로는 다양한 세대들이 함께 어울리던 거리에서, 특수 계층이 떠나버린 젊은이들의 거리로 변모했다. 많은 사람들이 다시 옛날의 동성로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산업사회 이후 현대도시에서 나타나는 도심공동화와 함께 외곽지 신개발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보인다. 도심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과 자동차로 복잡해져 더 이상 모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빈부의 격차와 다양성에 의한 세대 간, 사람 간 삶의 방식의 차이는 중세 형태의 도심으로는 수용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미 18세기의 런던과 파리, 그리고 19세기의 독일과 미국 같은 도시에서의 삶을 묘사한 소설과 사진들에서 그런 조짐을 볼 수 있다. 그러한 현상은 한 도시를 사람이나 동물처럼 성장에 대응하는 하나의 유기체로 볼 때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으로서 도시의 곳곳이 다양한 특성을 가진 장소들로 확대 조성된 데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 정체된 유기체는 성장하지 않으며, 이 시대에 정체는 곧 쇠퇴를 의미하는 것이 된다.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도시의 공공 공간은 사람들에게 편리하고 유용해야 한다. 그곳을 찾는 다양한 세대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곳곳을 누비며 생산적으로 즐기게 될 때 비로소 좋은 도시가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으로 잘 알려진 뉴욕시에서 근래에 '가로의 주인공은 사람'이란 또 하나의 획기적인 정책을 실행했다. 자동차와 사람들로 북적대던 브로드웨이의 상당 구간을 자동차 통행을 금지하고 보행자 전용으로 바꾸어버렸다. 그리고 그곳에 계단식 스탠드로 된 관람석을 만들고, 광장을 새롭게 조성하기도 했다. 브로드웨이는 원래 맨해튼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인디언 원주민들의 사냥로였는데, 21세기가 되면서 원래의 기능으로 되돌린 셈이다. 그러한 변화 이후 브로드웨이는 더 많은 관광객과 시민들이 모이게 되고 당연히 이전에 못 보던 독특한 이벤트가 생기면서 도심은 더 활성화되어 발전하게 되었다.

공공디자인 사업 이후 동성로는 젊음을 발산할 수 있는 활력이 넘치는 거리로 더욱 발전했다. 사람의 일생과 마찬가지로 도시도 나름의 운이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도시와 도시의 가로, 심지어 작은 장소에도 각각 상황의 굴곡이 있는데 동성로는 운이 좋은 가로였다. 도심공동화에 대한 우려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도심 가로에서 가장 지저분한 시설물인 전봇대, 자동차와 불법 노점에 도로를 빼앗긴 현대인의 소외감 등에 대한 문제해결 방안으로 시행된 전선지중화 사업이 시작되었다. 또 때마침 근대역사골목 활성화 사업이 성공적으로 실행되면서 지방 최초로 문광부의 공공디자인 시범사업의 대상으로 시행된 것이 새로운 동성로 탄생의 계기가 된 것이다.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보완하고 4성로를 연결하자

동성로는 걷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노면에 다양한 재료와 패턴으로 마감하면서 성벽이었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화강석 장대석을 가운데 연속해서 깔았으며(이 방식은 4성로에 계속 적용될 예정이다) 성벽 높이의 가로등을 설치하고 동장대, 동소문 등의 중요 시설물의 위치를 바닥과 벽면에 문양으로 표식하였다. 또한 가로수를 심어 뜨거운 여름 햇빛을 가리면서 녹색의 친환경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곳곳에 휴식과 만남을 위한 벤치와 소광장을 조성하였다. 이렇게 쾌적해진 동성로에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상업과 거리 문화 활동의 중심 장소로 되살아났다.

시대에 따라 도시의 중요한 장소의 지각변동은 불가피하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특별한 가로는 언제나 원도심에 존재해야 하고, 구도심은 유기체의 핵이며 그 핵의 혈관이 공공가로와 광장이다. 앞으로 현재 부족한 문화적, 예술적인 프로그램들을 보완하여 활성화한다면 동성로는 지리적, 물리적 그리고 역사적으로 가장 대구다운 요소를 담고 있는 가로가 될 것이다. 머지않아 100여 년 전 읍성을 허물어 길이 된 4성로를 새롭게 재생하여 모두 연결하면 대구는 세계적인 명품 가로를 갖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길은 사람 중심으로 연결됨으로써 생명력을 가지고, 원도심은 모태의 품처럼 재생할 것이다.

글=이정호 경북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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