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사람들은 시원하고 안락한 휴가지를 찾아 나선다. 덩달아 시민들의 안전을 담당하는 119도 바빠지는 계절이다. 며칠 전에 동료와 함께 관할지역의 ○○산에 비상구급함을 정비하러 아침부터 일찍 길을 나섰다.
배낭 안에는 시민들이 다쳤을 때 응급으로 사용할 수 있는 소독약, 붕대 등 상비약이 들어 있었다. 그 산에는 산행하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기에 곳곳에 비상구급함을 설치해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비치해 놨다. 그래서 부족한 물품은 없는지, 약품상태는 괜찮은지 수시로 점검을 해야 했다.
나와 동료는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산악사고를 대비해 무전기를 가슴에 달고 첫 번째 구급함을 향해 산을 올랐다. 산 정상을 향해 다가갈 때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으로 젖어버린 내 옷과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식혀주어 기분이 상쾌했다. 지나가는 등산객들과 인사를 나누며 구급함 정비를 마치고 하산하던 중 상황실에서 나와 내 동료를 찾는 무전소리가 들려왔다. "○○구급대! ○○구급대! 현재 위치가 어딥니까?"
난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고 현재 내가 있는 산의 위치를 설명했다. 다시금 들려오는 상황실 수보요원의 음성을 듣는 순간 왠지 다급한 환자가 생겼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구급대, 현재 위치에서 구급출동 가능합니까? 환자는 ○○산 능선에 있다고 합니다. 구조대도 동시 출동 중입니다." 구급함 정비에 나서기 전 미리 상황실 수보요원에게 통보를 했기에 상황실에서는 내가 ○○산에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난 아무 거리낌 없이 "출동이 가능하며 현재 환자가 있는 등산로와 환자상태를 알려달라"고 무전을 날렸다.
상황실에서는 환자가 정상에서 하산 중 발목이 꺾이면서 골절상을 입은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환자 위치는 일반적인 등산로가 아닌 폐쇄된 등산로라는 것이었다. 그 등산로는 너무 가파르고 길이 좁아 현재는 폐쇄된 등산로로 알고 있었다. 동료와 난 환자상태를 전해 듣고 구조대와 합류하여 환자가 있는 능선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동료와 난 이미 한 차례 산행을 한 터라 체력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았지만 골절환자가 발생했다고 하니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그래도 애타게 구조대와 나를 기다리고 있을 환자를 생각하니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지만 안중에도 없었다. 일반적으로 등산했더라면 1시간 정도 족히 걸릴 가파른 능선을 구조대원과 난 20분 만에 등반했고 정상을 얼마 안 남겨 놓았을 즈음에 오솔길 옆에 주저앉아 있는 여자 환자를 발견했다.
환자도 나와 구조대원들의 얼굴을 보고 안심을 했는지 표정이 한결 나아 보였다. 환자에게 다가가 현재 가장 아픈 부위가 어디냐고 물었다. 환자는 우측 발목이 너무 아프다고 말하면서도 땀을 비 오듯이 흘리는 나와 구조대원들을 보며 매우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난 환자에게 "저기 환자분,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 이런 게 저희가 할 일입니다. 다친 발목을 제가 좀 봐도 될까요?"라고 말했다. 짧게 대답을 마친 환자는 이제야 통증이 더욱 밀려오는지 고통스러워했다. 환자의 발목을 보는 순간 발목에 있는 경골 뼈와 비골 뼈 둘 다 부러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우선 발목이 매우 부어 있었고 통증도 심했던 데다 부목을 고정하려 환자의 다리를 살짝 들었을 때 부러진 뼈와 뼈가 부딪치는 마찰이 내 손끝 감각을 타고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2차적인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부목을 고정시켜 응급처치를 시행했다. 난 환자에게 "현재 환자분 발목 부분에 골절이 추정되고 이 상태로는 하산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산악사고에는 베테랑인 구조대 팀장님이 환자를 산악용 들것에 눕혀 정상으로 옮긴 후 헬기로 이송하는 게 가장 안전하고 병원에 이송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얘기를 했다.
구조대 팀장님이 헬기를 요청하고 구조대원들이 환자를 들것에 눕혀 들고 정상으로 향하려 발길을 옮길 때 구조대 팀장님이 나와 내 동료에게 먼저 하산해서 헬기가 내릴 수 있는 곳에서 대기하다가 환자를 인계받으라고 했다. 팀장님의 지시에 내 동료와 난 하산하던 중 저 멀리서 헬기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나와 내 동료도 환자를 걱정하는 마음을 조금 덜었다 싶을 때쯤 헬기 기장님의 무전소리가 들려왔다. 환자를 무사히 기내로 옮겼지만 헬기가 착륙할 넓은 공터나 운동장이 없으니 착륙할 수 있는 쪽으로 이동해서 구급대를 대기시켜 주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상황실에서는 착륙장에서 가장 가까운 다른 구급대를 보낼 테니 나와 내 동료는 귀소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나와 내 동료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센터로 복귀했다.
다음날 나는 환자분에게 "몸은 좀 어떠세요?"라고 전화를 걸었다. 환자분은 나에게 병원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고 검사를 해보니 발목뼈 2개가 다 골절되어 방금 수술을 마쳤다고 했다. 난 등산하시다가 다치시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그분들을 도와드리려 저희 119가 있는 겁니다. 빨리 쾌차하시고 다음에는 다치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양준호 대구 중부소방서 119구급대 소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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