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해적:바다로 간 산적

입력 2014-08-07 07:12:09

이순신, 조선 바다를 부탁하오 웃음바다는 우리가 지킨다

◆한국판 캐리비안의 해적…고래가 삼킨 옥쇄를 둘러싼 해적과 산적의 코믹액션

지난주 극장가에는 역사와 위인에 대해 진중하게 숙고케 하는 바람이 거셌다. '명량'이 한국영화 신기록을 계속해서 경신 중이다. 개봉일 최다관객, 평일 최다관객, 일일 최다관객, 개봉 첫 주말 최다관객 등. 그동안 '설국열차'나 '트랜스포머'가 지키고 있던 자리가 깨지는 걸 보니, 과연 이순신 장군은 백전백승의 명장이다.

2014년 여름 극장가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빅4의 대결의 판을 깔아 줄 것이지만, 이 전투는 싱거운 승부로 끝날 기미가 보인다. 빅4 중 선방을 날린 '군도'가 일주일 천하로 내리막길인 반면, '명량'은 개봉 6일 만에 660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아마도 개봉 2주가 채 되기도 전에 천만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만일 이와 같은 예상이 현실이 된다면, 이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깨지기 어려울 기록이 될 것이다.

영화가 올림픽 경기도 아니고, 무슨 무슨 기록 경신이니 호들갑을 떠는 게 우습게 보이기도 한다. 전 국민 다수가 일주일 동안 똑같은 영화를 보며, 함께 울고 웃는 현상이란 일견 비이성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다이내믹 코리아'란 한마디로 설명되는, 유행을 좇는 한국인의 특성을 비하적으로 말하기 이전에 대중문화의 특징과 현대영화 시장의 특징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니, "이런 사건이 벌어지고 있네" 하며 즐겁게 바라보면 될 것이다.

크게 투자하여, 매끈하게 잘 만들어서, 남녀노소 전 관객을 끌어들여, 크게 수익을 남기려는 것이 블록버스터의 특성이다. 이에 따라 극장가의 블록버스터 과열이 우려되는데, 이미 멀티플렉스 극장 개봉 현황을 보면, 관객의 선택 폭은 그리 넓지 않은 게 현실이다. 개봉관이 많아도 대개는 큰 영화 두세 편만 편성되어 있다 보니, 다양한 취향의 작은 영화들은 더더구나 관객을 만날 기회를 찾기 어렵다.

상영관 쏠림 현상은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늘 있는 지적이지만, 산업 규모가 세계 6위에 달할 정도로 영화 강대국이 된 한국영화 산업에서 대기업 계열의 멀티플렉스 극장의 이윤 행위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이 와중에 반가운 점은, 관객은 정확하게 좋은 영화를 선별하여 본다는 점이다. 상반기에 남자 스타를 앞세운 대작영화들 '역린' '우는 남자' '인간 중독' '하이힐' 등이 모두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던 것에 반해, 정공법을 선택한 '명량'의 성공사례는 영화 창작자들에게 또 하나의 롤모델이 될 것이다.

빅4 중, 이번 주에 개봉하는 세 번째 작품은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다. 이 작품은 빅4 중 유일하게 여자배우가 주인공인 반가운 작품이다. 손예진이 조선 바다를 호령하는 카리스마 여해적 두목인 여월을 연기하고, 김남길이 거친 산적 두목 장사정을 연기한다. '댄싱퀸'의 이석훈 감독과 '7급 공무원'의 천성일 작가가 의기투합하였다는 점, 한국판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여말선초의 혼란기 사회상을 배경으로 하여 도적들의 대격전을 그린다는 점, 그리고 오락성을 중심에 둔 퓨전 사극이자 해양 액션 어드벤처물이라는 점 등 영화는 흥행의 요소들을 두루두루 갖추었다. 거기에다 최근 흥행영화의 특징인 멀티캐스팅과 케이퍼무비적 요소, 특수효과의 세련된 활용 등 다양한 재밋거리와 볼거리를 갖추었다는 점 또한 흥미를 끌 요인이다.

잘 차려진 반찬이 제각각의 맛을 내며 밥과 어울려 진짜 맛을 내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이 영화는 대결구도를 만들기 위해 조선 개국의 주역들을 억지로 악당으로 끌어내리거나, 판에 박힌 캐릭터 대립 구도, 조연들의 과장된 행위, 뜬금없는 로맨스, 서양 해적 같은 무국적의 비주얼로 인해 영화의 질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철저히 오락성을 바탕에 둔다는 점에서 '해적' 또한 성공적인 시도로 남을 것이다. 고래와 거대한 물레방아 CG는 한국영화 기술의 성취를 보여주고, 영화 내내 끊임없이 날고 구르고 달리는 인물들은 관객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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