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돈, 외지로 샌다] (상)수도권에 밀려 고사 직전의 지역 전시업체

입력 2014-08-06 10:39:10

자본·기술·인력 한계…3대 문화권 사업 '별따기'

대구경북 전시업체가 고사 직전이다. 경상북도의 3대 문화권 사업을 비롯해 대구 섬유박물관 등 수십∼수백억원 상당의 상설 전시 사업들이 지역에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지만 그 혜택은 모두 수도권 업체에 돌아가고 있다. 대구경북 지자체는 지역 업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일도 수도권 업체에 몰아주는가 하면 진입 장벽을 높여 지역 업체의 참여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수도권 업체에 발주 물량을 송두리째 뺏긴 지역 업체는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상)수도권에 밀려 고사 직전의 지역 전시업체

(중)딤프, 지역 공연단체도 함께 키우자

(하)지역 업체 및 단체 인큐베이트하자

◆수도권 업체 잔칫상 된 '3대 문화권 사업'

최근 3, 4년간 지역 전시사업 시장은 공급 측면에선 '풍년'이었다. 지난 2008년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30대 선도프로젝트'의 하나로 '3대 문화권 문화'생태관광 기반조성사업'이 선정됐다. 이에 따라 경북도에는 수천억원대 대형 전시 및 박물관 사업 시장이 펼쳐졌다. 대구에서도 섬유박물관, 세계육상대회기념관 등 크고 작은 상설 전시사업이 쏟아졌다. 본지에서 파악한 최근 5년간 지역에서 이뤄진 상설 전시사업은 모두 30여 개로, 투자된 사업비용만 2천억원을 훌쩍 넘어선다.

자연히 지역의 전시업체들도 사업 수주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동안 대구경북지역은 수도권에 비해 상설 전시사업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영세한 지역 전시업체엔 몸집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열린 셈이었다.

하지만 상설 전시사업과 관련한 입찰 공고문이 하나 둘 뜨면서 지역 업체들의 기대감은 실망을 넘어 이내 절망으로 바뀌었다. 지역의 지자체들이 제시한 기준으로는 입찰에 참여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공고문이 입찰 참가 자격으로 '최근 3~5년간 전시시설 제작'설치 준공 실적이 단일 건으로 10억~20억원 이상의 업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지역 전시업계에 따르면 이러한 조건으로 입찰에 나 홀로 참여할 수 있는 지역 업체는 전체 30여 곳 중 3곳도 되지 않는다.

지역 업체들의 입찰 경쟁 결과는 참담했다. 지역에서 이뤄지는 공공 상설 전시사업에 투입되는 사업비용 2천여억원 중 90여억원만 지역 몫으로 떨어졌다. 이는 전체 사업비용의 4%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수도권 업체가 싹쓸이했다.

◆지역 업체에 등 돌린 지역 지자체

지역 업체의 바람은 하나다. '지역 업체와 공동도급 시 가산점 부여'를 평가항목의 하나로 넣어달라는 것이다. 대개 낙찰의 당락은 1, 2점의 근소한 차이로 결정된다. 한 점이 아쉬운 수도권 업체로서는 지역 업체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수도권 업체와의 공동도급은 지역 업체에 성장 원동력이 된다. 각 지자체에서 지역 업체 참여 비율을 40% 이상으로 정해줄 경우 10억원 규모의 사업이라면 지역 업체는 최소 4억원을 확보할 수 있다. 그 실적은 지역 업체가 다른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된다.

돈만 버는 것이 아니다. 기술력에서 앞선 수도권 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자체 전문성을 키울 수 있다. 고용 창출은 덤으로 따라온다. 지난해 경산시가 발주한 '삼성현 박물관' 전시업체 입찰에 수도권 업체와 공동도급을 통해 최종 선정된 포항시의 한 전시업체는 최근 6명의 지역 기술자를 새롭게 채용했다.

이런 지역 업체의 바람과는 달리 지역의 지자체는 역주행을 하고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3대 문화권 사업과 관련해 전시업 입찰 공고를 한 15개 사업 중 지역 업체 참여에 따른 가산점을 준 것은 경북개발공사가 발주한 '세계유교선비문화공원과 한국문화테마파크 조성사업'과 봉화군이 발주한 '인물역사관', 대구시가 발주한 '달성습지탐방나루' 등 3개 사업뿐이다. 경북의 두 사업은 안동과 경산의 지역 업체가 각각 수도권 업체와 공동도급을 통해 사업 수주에 성공했다. '달성습지탐방나루'는 결과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나머지 12개 3대 문화권 사업은 지역 업체와 공동도급 시 가산점을 별도로 주지 않고, 단지 권장하는 차원에만 그쳤다.

전국 규모의 입찰 경쟁이 벌어져 지역 업체에 대한 가산점이 없는 조달청 발주로 넘겨지는 경우도 많다. 대구 섬유박물관과 경북 독립기념관 등 일부 전시사업은 조달청 발주를 통해 입찰 경쟁을 붙였는데, 132억원 규모의 대구 섬유박물관은 수도권 업체의 몫이 됐다.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지역 전시업체

전시사업 입찰에 반복해서 떨어진 지역 업체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경북의 A전시업체 대표는 "최근 5년간 단독으로 혹은 공동으로라도 전시업 관련 일을 해 본 적이 없어요. 반(半)백수나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2005년 이 업체가 처음 상설 전시업을 시작했을 때는 직원이 모두 7명이었다. 이 업을 시작하고 3, 4년 동안은 작은 규모의 사업 수주를 통해 희망을 꿈꿀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일거리는 가뭄에 콩 나듯 들어왔다. 적자는 계속됐고, 직원들은 일자리를 찾아 하나 둘 서울로 떠났다.

대구도 사정이 다르진 않다. 대구의 B전시업체 대표는 "직원들이 의욕을 잃었다. 최근 3년 안에 10번 정도 공모전 입찰에서 떨어져 3억~5억원의 손실을 봤다"고 털어놨다. 이 업체는 5년 전까지만 해도 연간 수익이 수십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수도권 전시업체가 대구경북지역까지 진출하면서, 급속도로 어려워졌다. 5억원 미만의 작은 사업부터 10억원 이상의 큰 사업까지 수도권 업체가 휩쓸었다. "입찰 제안서 하나를 만드는 비용만 3천만~5천만원인데 떨어지면 물거품이 되는 거죠. 이젠 입찰공고가 떠도, 지원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전시업체 취업을 희망하는 지역 대학생들도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 전시업계에 따르면 3D 등을 다룰 수 있는 고급 인력의 근속연수는 최소 1년이며, 이직률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서울의 전시업체에 취업한 한 지역 대학생은 "지역 업체에는 일이 없어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서울 업체를 찾아 올라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획취재팀=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 신선화 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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