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이 화제다. 개봉하면서부터 매일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을 뿐 아니라 하루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여 한국영화사를 다시 쓰고 있다.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순신의 명량대첩과 연기파 배우 최민식의 내면 연기, 그리고 김한민 감독의 스토리텔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영화라고 평가한다.
영웅이 필요한 시대, 영웅에 대한 그리움이 이런 평가와 기록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분석도 줄을 잇는다. 영화에서 이순신이 가는 곳마다 백성들이 그를 따른다. 이순신과 백성들은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나는 영화를 보며 자식을 리더로 기르고자 하는 부모들을 생각했다.
지난달 29일 '노 키즈 존(No Kids Zone)의 확산'을 우려하는 보도가 있었다. 서울지역에서는 이미 공공연하게 고급음식점과 백화점 VIP 라운지, 다중이용시설은 물론 골목길 작은 카페와 찜질방에 이르기까지 영유아의 출입을 거부하고 있다. 아예 '유모차는 나가주세요'라 붙여놓기도 한다. 아직 지역에서는 표면화되고 있지 않지만 어린 아이를 동반한 가족 손님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소란을 피우거나, 떼를 쓰는데도 그대로 방치하는 부모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뛰어다니는 아이에게 주의라도 주게 되면 부모는 싫은 소리로 맞받아친다. 그러니 다른 손님에게 폐를 끼치는 영유아 고객을 받지 않겠다는 매장의 입장에 이해가 간다. 육아를 장려하는 국가정책과는 별개로 아이들과 갈 곳이 없다는 아이러니한 기사가 영화 '명량'과 오버랩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 아이들을 기르고 있는 30, 40대는 1960년대 후반~1970년대에 태어나 우리나라의 빠른 변화와 발전을 지켜본 세대다. 중고등학교 때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겪었고, 대학에서는 배낭여행으로 세계를 경험한 세대다. 그리고 졸업과 함께 IMF를 겪으면서 전통적인 조직사회의 붕괴를 경험했다. 어려운 취업과 살벌한 구조조정을 보면서 더 이상 조직이 개인을 보호해 줄 수 없음을 알았고, 능력만이 힘이 된다는 것을 몸으로 익혔다. 그리고 이들이 부모가 되었고 그 아이들 역시 개인의 능력을 기르는 데 집중하며 자라고 있다. 방학이면 '리더십'을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엄마들은 줄을 선다. '네가 최고야'로 자란 아이들은 여전히 '내가 최고가 되기 위해 학습'을 하며 길러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리더가 되는 길'인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리더의 부재'를 이야기한다.
이순신은 항상 솔선수범했으며, 시간과 정성을 들여 조직의 힘을 기르기 위해 노력했다. 이 때문에 가는 곳마다 장병들과 백성들은 그를 따랐다. 역사서에는 '이순신 장군의 배 뒤로 수많은 고기잡이 배가 떠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우리 측의 배가 많아 보이기 위함이었다. 이 덕분에 명량대첩은 이순신 장군의 승리이자 그와 함께한 백성들의 승리가 되었다.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도 이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이순신 혼자만의 승리가 아닌 그와 함께했던 모두의 승리로 만들어 내면서 '영웅'이전에 '리더 이순신'을 보여주었다.
과거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단어가 '골목대장'이다. 예전에는 동네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들만의 사회를 만들고 놀았다. 그 안에서 서로 리더가 되어보기도 했다. 문제가 생기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의 규칙을 만들고 이를 적용해 보면서 자연스럽게 조직을 배우고, 리더의 소양을 익혔다. 지금은 어떤가? 골목에는 아이들이 사라진 지 오래다. 서로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는 그저 텍스트로, 머리로 배우는 것이 전부다. 진학과 취업만이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살아간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힘보다 개인의 성과로 평가되는 것이 현실이다. 리더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조직도 없다. 어쩌면, 진정한 리더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금도 리더를 원한다.
영화 '명량'에 흥분하고 이순신에 감동했다면 '명량'이 전하는 메시지를 다시 생각해보자. '명량'이란 단순한 영화 한 편을 넘어 사람들 속에서 올바른 리더의 콘텍스트로 재탄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이 바로 콘텐츠의 힘이다.
박은경/한국애드'㈜스토리파크 대표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