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미국 생활 '영어 재능 기부'…대구 온 월털 씨

입력 2014-08-01 07:32:39

서구청 한글교실 다니다 회화 강사 제의 받도 강의 "어르신 수강생 의욕 뿌듯"

심 마이클 월털 씨가 서구청 구민학습관에서 영어 수업을 하고 있다. 서구청 제공
심 마이클 월털 씨가 서구청 구민학습관에서 영어 수업을 하고 있다. 서구청 제공

"제 강의를 열심히 듣는 수강생을 볼 때 가장 행복합니다. 저의 능력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습니다."

심 마이클 월털(65) 씨는 매주 금요일 대구 서구청 구민학습관에서 열리는 영어 수업만 손꼽아 기다린다. 수업 준비를 위해 교재도 직접 만든다. 수강생 대부분이 어르신들이라 발음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나 일상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생활영어 위주로 강의 준비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초등학생 시절 부모님을 여읜 심 씨는 13세 때 서울에서 미국 뉴욕의 이모 집으로 입양됐다. 낯선 환경이었지만 그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학창 시절에는 공부에 매진, 명문대학에 입학했다. 그 후 17년간 회사생활을 거친 뒤 21년간 자신의 사업체를 운영하면서는 밤낮으로 일에만 매달렸다. 그렇게 온갖 노력을 한 결과 심 씨의 사업체는 뉴욕 맨해튼 중심지에서 교통설비 자문업체로는 인정받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아들과 딸도 공군 대위와 육군 대위로 반듯하게 자라주었다.

미국 사회에서 떳떳하게 살아가던 심 씨는 지난해 6월 아내와 함께 50년 만에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남은 삶을 한국에서 보내자는 한국인 아내의 설득에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돌이켜 보니 그동안 공부와 일에만 신경 썼지 자신을 위한 시간은 가지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심 씨는 미련 없이 사업을 접고 처가 식구가 있는 대구로 들어왔다.

도착하자마자 한국어를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서구청 어르신 한글교실에 등록했다. 한 구청 직원이 이력이 특이한 그를 보고 마침 영어 회화반 강사가 필요한데 심 씨가 딱 맞다고 판단해 그를 설득했다. 이 제안에 심 씨는 미국에서 교통건설 전문가로만 일했지 가르치는 일은 처음이라 한동안 결정을 하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하지만 아내와 한글교실을 같이 수강하는 어르신들의 격려에 용기를 얻었다. 생각보다 적성에도 잘 맞고 수강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50명의 학생 중 절반 이상이 지난 1년간 꾸준히 이 강의를 신청했다. 서구청 구민학습관 강좌 가운데 무보수로 열리는 강의는 심 씨의 강의가 유일하다.

"수강생 50명이 대부분 제 또래의 50, 60대 이상 어르신입니다. 수강생들의 의욕적인 모습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 없습니다."

심 씨는 한국에 들어온 지 1년이 지났지만 언어나 문화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을 아직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또 미국에서 잘나가던 시절을 돌아보면 너무 일찍 돌아왔나 싶은 아쉬움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한평생 내조해준 아내와 심 씨의 수업으로 영어에 자신감을 얻은 수강생들의 모습을 보면 그런 마음은 싹 가라앉는다고 했다.

"영어 강의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어디든 나가보고 싶습니다. 또 교통건설 전문가로 오래 일한 경험을 살려 지역 교통 문제에 자문도 제공하는 등 제 경력을 한국에서도 펼쳐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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