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 얼른 간식부터 달라며 보채는 체셔를 어르던 중, 예전에 내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앞으로 내가 너(체셔) 먹여 살릴 만큼은 벌어야 할 텐데'라고 했던 말. 정확한 시기까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약 7년쯤 전에 체셔에게 했던 말이었다. 당시에 체셔는 비교적 작고 어린 고양이였고,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한다는 일이 머나먼 미래처럼 느껴지던 철없던 취업준비생이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고양이와 함께하고 고양이를 돌보는 것은 내 몫이었지만 완벽하게 반려인 입장에서 반려동물을 '책임져' 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부모님이 주신 용돈으로 체셔의 사료와 간식을 사 주고, 화장실 모래도 갈아주곤 했다. 그랬기에 직접 번 돈으로 자신의 고양이에게, 또는 다른 종류의 반려동물들에게 학생인 나로서는 엄두도 못 내는 용품들을 척척 사 주는 다른 이들이 늘 부러웠다. 그래서 이렇게 반쯤은 부러운 마음에, 그리고 반쯤은 제대로 해 주는 게 없는 반려인으로서 체셔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나중에 더 잘해줘야지 다짐하며 꺼낸 말이었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체셔에게 내가 해 주는 것은 비슷하다. 예전보다 더 비싸고 좋은 간식을 사주거나 멋들어진 캣타워를 떡하니 사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물가가 오르는 바람에 덩달아 비싸진 사료와 통조림 가격으로 인해 늘 좀 더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방법을 궁리하곤 한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면이 있다면 이제는 내가 사줄 수 없는 것들로 인해 고양이들에게 미안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체셔와 앨리샤는 캣타워가 없어도 계단과 난간을 캣타워 삼아 오르내리며 때로는 그곳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고, 최고급 사료는 아니지만 그래도 매번 자신들이 먹는 밥에 별 불만 없이 까득까득 소리를 내며 매일 밥그릇을 비워놓는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녀석들은 음료수 병에서 분리된 플라스틱 고리 하나만으로도 온 세상 장난감을 다 가진 것처럼 흥겹게 잘 가지고 논다. 덕분에 난 더 이상 녀석들에게 캣타워를 사줘야 할지 말지, 아니면 더 좋은 재료로 만들었다는 사료로 바꾸어 줘야 하나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 요즘 들어 그런 점들보다 부쩍 더 신경 쓰게 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아플 때'이다. 얼마 전 지인의 반려견이 수차례 병원을 가게 된 일이 있었다. 열 살이 훌쩍 넘은 노령견이기에 신체기관 여기저기가 노쇠한 상태였고 결국 큰 동물병원에서 수술과 회복 과정을 거친 후 귀가를 할 수 있었다. 반려견이 집으로 돌아오고 며칠 후에 만난 친구는 꽤 덤덤한 표정으로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해줬다. 워낙 큰 수술을 하는 바람에 꽤 많은 돈이 들었고 추가적인 검사 비용으로 인해 앞으로도 돈이 제법 더 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살아줘서 너무 고맙고 그걸로 된 거라고. 나 역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기에.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 심정이 이해가 됨과 동시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그래도 너무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슬슬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만약에 우리 집 고양이들이'란 생각이 연이어 떠올랐기 때문이다.
분명 반려인이 함께 사는 반려동물에게 느끼는 책임감은 부모님이 자식들에 대해 느끼는 책임감과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기에 별것 아닌 양 가볍게 치부하고 넘겨버리기엔 꽤나 무거운 책임감이다. 어쩌면 나이를 먹고 어느 순간이 되면 독립하게 되는 자식과는 달리, 반려동물은 그의 평생을 반려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더 무거운 책임이 주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선택했고, 반려인과 반려동물의 사이가 된 이상, 내 지인이 그랬듯 어떤 상황에서도 그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반려동물을 대함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책임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렇기에, 나 역시 꾸준히 체셔와 앨리샤에게, '녀석들을 먹여 살릴 만한' 반려인이 되고 싶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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