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마루야마 선생, 당신도 틀렸어!

입력 2014-07-31 11:30:02

이달 24일과 25일 아산정책연구원 주최로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탄생 100주년 기념 한'일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마루야마는 국내 독자들에게는 비교적 생소한 인물이지만 일본에서는 '학계의 덴노(天皇)'로 불릴 정도로 학문적 영향력이 대단했던 정치학자로, 일본의 근대화는 왜 '초국가주의'라는 괴물을 낳게 됐는가라는 문제의식하에 메이지유신 이후 1945년 항복 때까지 일본 사회의 작동방식과 정신병리 현상을 치열하게 추적해왔다.

아산정책연구원이 이번 학술대회를 개최한 것은 바로 마루야마의 이러한 문제 의식이 "아베 정권의 집단적 자위권 용인 등 일본의 우경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동아시아 평화와 민주주의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마사오의 학문적 이력은 분명히 이런 기대를 걸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마루야마 상(像)을 허구로 만들 수 있는 문제점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우선 그의 한국관은 대단히 부정적이다. 그는 중국 문화에 대한 조선과 일본의 수용 방식을 비교하면서 조선을 홍수형(洪水型), 일본을 누수형(漏水型)으로 분류하고, 누수형의 일본은 중국 문화의 영향력을 선택적으로 수용한 데 반해 한국은 선택의 자유 없이 중국 문화에 동화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한국 역사를 '사대적'이라고 매도한 식민사관과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이러한 역사 인식에 대해 성균관대 미야지마 히로시(宮嶋博史) 교수는 "현실의 역사 과정이 사상(捨象)돼 버린" 것이라고 비판한다. 즉 중국 문화를 전면적으로 수용했다고 해도 수용하는 측의 사회가 고도의 문화적 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제 도입만 해도 그것이 현실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인쇄기술의 발달과 서적의 보급이란 조건이 필수적인데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기란 15세기 일본에서는 불가능했다는 지적이다.('일본의 역사관을 비판한다')

더 놀라운 것은 군국주의 파시즘을 집요하게 비판했지만 그것이 일본 근대화가 초래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결과가 아니라 '일시적 일탈'이었다는 변명이다. 그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국제적인 독립의 확보는 대외 침략과 매우 일찍부터 결부되어 있었다"면서도 "세계대전 특히 만주사변 이후에 볼 수 있는 방약무인(傍若無人)한 권력의지 혹은 국가적인 이기주의라는 생각은 메이지(明治) 시대에는 아직 그렇게 노골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는 마침내 "메이지 일본의 근대 국가로의 발전 과정에서 모든 변질과 타락이 지적되어도 그 후의 시대에 비하면 메이지 전체에는 무언가 근본적인 건강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전중과 전후 사이 1936~1957') 그러나 역사는 이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일본은 메이지 연간(1868~1912)인 1894년에 청일전쟁, 1904년에 러일전쟁을 도발했으며 1910년에는 조선을 강제 병합했다. 그의 주장에는 이러한 침략의 역사가 지워져 있다. 역사는 '일본의 타락은 만주사변(1931년) 이후부터'라는 마루야마의 주장은 허구임을 말해준다.

이 같은 사실의 편의적 취사선택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미화(美化)에서도 잘 드러난다. 후쿠자와는 일본 근대화 과정의 '총체적 스승'으로 일본인의 추앙을 받고 있지만 실은 아시아 멸시와 침략을 선동하고 합리화한 제국주의 나팔수였다. 특히 조선에 대해서는 "조선 인민을 위해서도 빨리 망해 문명국의 관리 밑으로 들어가야 할 야만적 정부의 나라"라고 했다. 그러나 마루야마는 후쿠자와를 "인간평등을 주장한 천부인권론자이자 메이지 정부의 행보에 비판적인 '전형적인 시민적 자유주의자'"로 둔갑시켰다. 후쿠자와의 말 중에서 원래의 문맥과 상관없이 자신의 주장에 들어맞는 부분만 뽑아 쓴 결과다.('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 야스카와 주노스케(安川壽之輔))

이러한 마루야마의 어두운 부분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는 중국 역사를 '정체'로 규정한 헤겔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고 일본이 봉건제를 거쳤다는 점을 근거로 일본 역사를 세계 곧 서구와 동렬의 보편적 역사로 파악하는 서구 중심주의자이기도 하다. 이런 편향적 시각의 소유자를 '덴노'로 추앙한 일본 학계의 '생각의 얕음'을 알 만하다. 미국이 히로히토를 하늘에서 끌어내린 것처럼 일본 식자들도 이제 그를 '덴노'에서 끌어내릴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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