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안의 낯선 가게, 외국인 슈퍼마켓…'쇼핑 탐험' 떠나볼까

입력 2014-07-26 07:57:20

이름 모를 과자·술…외국인 근로자 유학생 "사막 속의 오아시스 같아요"

캄보디아에서 온 산리티 씨가 월드아시아마트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온 산리티 씨가 월드아시아마트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다.
슈퍼마켓 안에는 일반 슈퍼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양념들도 있다.(맨 위 사진) 슈퍼마켓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각종 술.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다.(두번째 사진)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과자류.
슈퍼마켓 안에는 일반 슈퍼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양념들도 있다.(맨 위 사진) 슈퍼마켓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각종 술.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다.(두번째 사진)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과자류.

한국인들에게 외국인 슈퍼마켓은 낯선 동시에 설레는 곳이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국적인 향신료 냄새가 코끝을 감싼다. 물건들에는 읽을 수 없는 문자들이 가득하고 무슨 물건인지 손끝으로 알아내야 하지만 수고스럽지 않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한편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에게는 익숙한 공간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나마 달랠 수 있는 곳이다. 어느새 대구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은 외국인 근로자들과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외국인 슈퍼마켓은 대구 안에서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대구에 있는 특별한 슈퍼마켓, 그 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게 문을 여는 순간,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도시의 이름은 잠시 잊게 된다.

◆가도 가도 질리지 않는 곳

외국인 슈퍼마켓은 외국인 근로자와 유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에 많이 있다. 대구 북부정류장과 성서산업단지 근처, 외국인 유학생이 많은 영남대와 계명대 근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구에 외국인 수가 많아지고 출신 국적이 다양해지자 외국인 슈퍼마켓은 대구에 꼭 필요한 장소로 자리 잡고 있다. 물건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아도 잠깐의 그리움을 달래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 기준으로 대구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총 3만2천522명으로 현재 대구 총인구 252만4천900명의 1.28%다. 그중 외국인 근로자는 지난해 9천31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7천573명으로 집계됐던 2008년보다 1천737명이 많아진 수치다. 국적도 다양해지고 있다. 5년 전 외국인 근로자 국적은 중국, 대만, 일본 등 동북아(3천498명)와 베트남,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4천75명)가 전부였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동북아(2천46명)와 동남아(4천994명) 출신에 더해 스리랑카, 파키스탄, 네팔 등 남부아시아(1천692명)와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578명) 출신까지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외국인 슈퍼마켓은 가도 가도 질리지 않은 곳이다. 캄보디아 출신 산리티(27) 씨는 전날 휴가로 집에 다녀왔지만 한국에 오자마다 또다시 슈퍼마켓을 찾았다. 그는 "오늘은 친구 휴대폰도 새로 하고 저는 필요한 식재료를 사러 왔어요"라고 했다. 그는 죽순과 매운 고추 피클 등 캄보디아 음식을 소개해줬다. "캄보디아 사람들에게는 김치 같은 존재"라는 산리티 씨의 말에 작은 유리병 하나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산리티 씨는 "여기가 유일하게 고향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에요. 한국에 온 지 2년이 지났지만 매일 와도 질리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누가 외국인인지 헷갈리는 그곳

대구 서구 비산동 북부정류장 입구에는 외국인 슈퍼마켓 6군데가 줄지어 들어서 있다. 북부정류장 입구에 위치한 월드아시아마트(World Asia Mart)에 기자가 들어서자 마켓 안에 있던 외국인 손님 6명과 중국인 사장의 대화가 잠시 끊어졌다. 그들은 '여기에 한국인이 어떤 일로?'라는 표정으로 기자를 쳐다보았다. "마켓을 찾는 사람들의 90% 이상이 외국인이고, 한국인이 들어오는 때는 일반 슈퍼마켓인 줄 알고 잘못 들어오는 경우예요. 대다수가 후다닥 나가버리곤 해요"라는 중국인 사장 손영 씨의 설명을 들으니 시선이 쏠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중국,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 지역의 식재료를 팔고 있다. 가게를 반으로 나눠 한쪽에는 식재료가, 나머지 한쪽에는 중고 휴대폰이 판매되고 있었다. 5대의 냉장고와 가게 벽면, 진열장에는 생소한 물건들로 가득했다. 만두만 해도 고기만두, 부추고기만두, 샐러리 고기물만두 등 종류가 5가지가 넘었다. 육류도 돼지 귀, 돼지 꼬리 등 흔히 접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손 사장은 "한국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 물건은 과자와 주류 제품"이라고 했다.

한눈에 봐도 가게 안에는 한국 사람이 없었다. 캄보디아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 3명과 가게 한쪽에서 수다를 떨던 중국인 아주머니 두 사람이 있었다. 잠깐 시간이 흐르자 어색한 분위기는 금방 사라졌다. 가게 안에 있던 손님들은 눈을 마주치면 수줍은 듯 눈인사를 건넸다. 마른 두부를 먹으며 수다를 떨던 중국인 아주머니가 마른 두부를 한 장 손에 쥐여줬다. 짧은 중국어로 "맛있다"고 하자 환하게 웃었다.

◆외국인 유학생의 눈과 귀

돈벌이가 없고 주머니 사정이 비교적 어려운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슈퍼마켓은 물건을 사는 곳 그 이상이다. 계명대학교 근처에 있는 한 외국인 슈퍼마켓에는 유독 다른 마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제품 몇 종류가 눈에 띈다. 치약, 샴푸 등 생필품들이다. 마트 사장 김모(48) 씨는 "대학가이다 보니 외국인 유학생들이 많이 와요. 말이 안 통해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은데 한국 마트에 가지 않아도 꼭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도록 몇 개 갖다 놨어요"라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외국인 학생들로부터 뜻밖의 부탁을 받는 경우도 많다. 비행기 표를 끊거나 보험에 가입해야 할 때 외국인 학생들은 김 사장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귀찮을 법도 하지만 김 사장은 시간을 쪼개 친절하게 도와준다. "어제도 한 중국인 유학생 보험 문제를 해결해 줬어요. 저도 중국어는 할 줄 모르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거의 매일 보는 저에게 믿음이 가나 봐요"라며 웃었다.

외국인 슈퍼마켓을 운영할 때에는 특별한 친화력도 필요하다. 김 사장은 "5년 전에는 몰랐는데 이제는 학생 얼굴만 봐도 어느 나라 출신인지 알 수 있어요. 학생들의 고민이 주로 합법적으로 일자리를 얻고자 하는 건데 도움을 줄 수 없어서 안타깝죠"라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마음 편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곳, 또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에 학생들은 큰 위안을 얻는다.

◆도전적으로 즐겨보자

외국인 슈퍼마켓은 한국인들에게는 새로움으로 가득한 곳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호기롭게 슈퍼마켓에 들어와도 선뜻 낯선 물건을 사지 못한다. 그러나 약간의 용기를 가진다면 슈퍼마켓 쇼핑을 몇 배로 즐길 수 있다. 10년째 북부정류장 근처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파키스탄 출신 무함마드(45) 씨는 "한국인들은 과자를 가장 많이 사갑니다. 다양한 식재료에도 도전해봤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해요"라고 조언했다.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뜻밖에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배가된다.

외국인 슈퍼마켓을 이용할 때 한 가지 유의할 점도 있다. 마치 관광지에 온 것처럼 이것저것 물건을 과하게 만져보고, 부주의하게 물건을 던져서는 안 된다. 북부정류장 근처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윤주(40) 사장은 "용기도 좋지만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해요. 외국인들이 불편해하거나 영업에 방해가 될 때도 가끔 있어요"라고 당부했다.

글 사진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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