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터View] 이병균 한국노총 사무총장

입력 2014-07-25 07:07:49

정부 경제 실세들 물밑 접촉 설득…최저 임금 타결 '숨은 공신'

지난달 26일 내년 최저임금 시급이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결정됐다. 올해보다 7.1%(370원) 오른 5천580원. 최저임금위원회가 법정 시한 내에 인상안을 심의, 의결한 것은 20년 만에 처음이었다. 노사정(勞使政) 모두 이병균(54)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사무총장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입을 모은다. 21일 한국노총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최저임금 타결의 숨은 공신이란 덕담을 건넸는데 돌아온 답은 예상 밖이었다. 이 사무총장은 "최저임금은 노사정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어느 정도 먹고사는 문제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저임금 수준까지 올려놓는 것이 선결되어야 할 것"이라며 "상시 5인 이상 상용근로자의 월 평균임금의 절반 수준, 그러니까 월 150만원 정도가 최저임금이 되면 거기서부터 노사정이 협상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올해 최저임금이 7.1% 인상됐다는 소식이 희소식이 아니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를 줄여야 하고 최저임금을 정하고 나면 반드시 지키도록 법과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며 "최저임금은 노동계가 그분들을 대신해 협상해 주는 것인데 실제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채널이 없다"고 했다.

-6천390원이냐, 5천265원이냐를 두고 팽팽했지만 법정 시한 내 타결이 됐다.

▶교섭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당사자들에겐 턱없이 부족하다. 최저임금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업체는 시속 100㎞로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빠지고 국도로 가야 한다고 본다. OECD 최저임금 최하위인 이유다.

-이런 질문을 드리면 답하기 곤란할까. 박근혜정부의 노동정책을 평가해 달라.

▶정부 출범 후 1년하고 절반이 지난 이 시점까지 대화가 단절됐다. 2기 내각이 들어서기 전에 어떤 작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현 정부의 실세라고 불리는 분들을 죄다 만나 "정부가 한국노총하고 대화하지 않는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었다. 모두 "그건 큰 문제"라고 답하더라. "지극히 비정상"이라고 한 분도 계신다. 국회의원에서부터 청와대 수석비서관도 모두 그랬다. 그래서 노동 현안에 대해 각 경제주체가 마주 앉아 토론하는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이 사무총장의 물밑작업이 주효했나 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경제정책의 성공 여부는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살리느냐에 달렸다. 노사정 모두가 머리 맞대고 고용 창출을 지속하는 가운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불합리한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도 취임식에서 "단절된 노사정 간 대화를 조속히 복원하겠다. 통상임금, 정년연장, 근로시간 단축 등 당면한 현안을 풀기 위해 꼭 필요한 임금체계의 합리적 개편 등 근원적인 대안과 실천방안을 노사와 열심히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찾아내겠다"고 밝혔다.

▶물밑에서 그런 공감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 않겠다. 이런 말을 했다. "서로 밤이 깊었다. 대화할 수 있는 새벽이 다가오고 있다." 조만간 대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고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다. 만나서 대화하면 합리적인 부분은 양보하면서 합의점을 찾아갈 것이다.

-듣기 싫어할 질문도 드리겠다. 한국노총이 민주노총에 비하면 좀 온순하다고 평가하는 분들이 계시다.

▶한국노총은 68년 전통과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협상이 매우 중요하다고 인식한다.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도 노정교섭을 통해서 하는 것이다. 노정교섭은 투쟁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월 27일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우리는 "협상과 투쟁을 병행해서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투쟁이지 투쟁을 위한 투쟁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각종 위원회에서 한국노총이 1천800만 노동자 입장에서 주장하고 관철하고 입법화하는 것이 목표다. 우리의 합리적인 요구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단체행동권을 발동하는 것이다. 그걸 두고 착하다, 순하다 표현하는 것 같다.

-결국, 한국노총의 노동운동 방향이 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직 진행 중이어서 말씀드리기 어려우나 조직이 커지고 있다. 지금도 굵직굵직한, 수만 명이나 되는 노조들이 문을 두드린다. 우리는 현장 조합원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을 펼칠 것이다. 과감하게, 가지 않는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한 정책 발굴에도 힘쓰고 있다. 한국노총은 사측이나 정부 측 상대방을 존중하고, 함께 가야 할 경제주체라 생각한다. 싸움의 대상이 아니다. 종국에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한국경제가 도약할 것이다. 대기업 중심의 노동운동은 끝났다. 50명 미만의, 10명 미만의 노조에 필요한 도움과 실질적 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그런 분들에게 우리가 보호막이 되어야 한다.

-내친김에 이런 질문도 드리겠다. 한국노총이 과거 민주당과의 통합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시도했다. 지금 입장, 즉 스탠스는 어떤가.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과 저는 출범하면서 정치적 중립을 선언했다. 정책연대했던 모든 꼬리를 잘랐다. 이번 집행부는 여야를 떠나 정치적 중립을, 여야를 아우르는 활동을 할 것이다.

-지난 1월 사무총장으로 취임하고 7개월 정도 지났다. 소회가 어떤가. 성과는.

▶사무총장 자리는 간부와 조합원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리다. 그런데 워낙에 노동계가 유연함이 떨어지고 자기만의 사고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그래서 보이는 것부터 바꾸자는 생각에 한국노총 사무실을 완전히 오픈했다. 엄청난 반대와 저항이 있었지만 "벽은 둘로 가른다. 갈라져선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업무효율이 높은 대기업에선 칸막이가 없다. 또 '작업 스탠더드'를 만드는 6개월짜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해야 할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보이는 곳에 걸어두는 것이다. 제 사무실도 모두 그렇게 바꿀 것이다. 직접 써보면 명확해진다.

-빨간 조끼의 투쟁 일변도 노동운동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

▶노동운동이 국민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빨간 단풍색 조끼는 새누리당에 뺏겼다(웃음). 우리는 1천800만 노동자가 우리의 고객이라 생각하고 찾아가는 서비스로 만족도를 높일 것이다. 어떤 노동자는 조합원 모두가 만족하는 스마트폰 한국노총 앱(application)을 제안했다. 언제까지 이면지를 써서 붙일 것이냐는 문제 제기였다. 들어보니 상당히 맞는 말이더라. 폰을 따라 길을 찾든 노총의 앱으로 길을 터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진행이 잘 되면 10월 전국 대표자대회 참석을 앱을 통해 알릴 것이다. 나도 어느새 프레임에 갇혀 있더라. 그걸 깨야 한다. 안으로는 변화와 혁신을 추동하고 밖으로는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한국 노동운동의 미래는 없다.

◇李 총장 고향 구미 발전 조언…구미지역 경제 재도약 대기업 유치 달렸는데 4·5공단 분할 안될 말

이병균 사무총장은 19, 20일 고향 구미를 다녀온 말부터 꺼냈다.

"상갓집에 갔더니 LG, 삼성 등의 협력사 노조원들이 있더군요. 너무 힘들다고 노총에서 도와달라고 애걸해요. 상여금 200%에 통상시급 9천원, 4대보험 가입도 보장받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월급 130만원, 오버타임하면 150만원인데 맞벌이라도 300만원 수준이잖습니까. 기업의 직고용률이 떨어지고 저임금에 내몰리고 그조차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 구미 경제의 현주소지요."

이 사무총장은 지난 대선 직전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구미의 딱한 사정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박근혜정부에서 실물경제를 제대로 파악해 일자리를 만들고 대구경북 경제발전에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구미4공단, 5공단 부지를 토막토막 내 분할합니다. 안 됩니다. 대기업 하나를 제대로 유치해서 부흥시켜야 할 지금 토지 분할로 고만고만한 공장을 유치한다니요. 현직 국회의원들도 새누리당 정서에만 기대 안일하게 지역경제에 대처하는 것 같습니다. 대구경북도 역대 많은 정권을 출범시켰지만 더는 역차별받아서는 안 됩니다."

1959년생인 이 사무총장은 구미 해평초, 해평중, 구미전자공고를 거쳐 오산대를 중퇴했고, 고려대 노동대학원을 수료했다. 1980년 금성전기에 입사해 1985년 옛 대우전자로 옮겼고, 이후 대우 일렉트로닉스 노조 구미공장지부장을 지내면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전국금속노조연맹 재선 위원장에다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을 지내고 지난 1월 25대 사무총장에 선출됐다.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 노사발전재단 이사, 중앙노동위 등 9개 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다. 2002년 노동부 장관 표창, 2005년 은탑 산업 훈장을 받았다.

글'사진 서상현 기자 subo801@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