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가 사라졌다!' 며칠 전, 회사 주차장 입구를 지키던 종이 주차권 발권기가 사라졌다. 발권기 자리를 대신한 건 번호판 자동 인식기다. 예전 같았으면 무심코 넘어갔을 일이다. '더 편해졌다'며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종이가 사라졌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인터넷에 떠돌던 기사 하나가 번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SNS에 올라온 기사를 확인한다. 그런데 이날 만큼은 '괜히 열어봤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신문기자, 10년 안에 몰락'. 제목부터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열어봤다. 미국 언론이 구인 구직 정보업체 '커리어캐스트'가 선정한 '10대 몰락 직종'을 인용해 보도했고 몰락 직종 중에는 신문기자도 포함돼 있었다. 입사한지 1년도 안 된 신입 기자에게 더 없이 가혹한 기사였다.
기사를 접한 주변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힘내!"라는 말과 함께 기사 링크를 보내주는 사람, 친절하게도 SNS에 올라온 기사를 내가 볼 수 있도록 태그를 걸어주는 사람 등이 있었다. 같은 시기에 기자가 된 친구는 "몰랐던 것 아니잖아"라며 체념하는 태도를 보였다. 어떤 말도 어두워진 마음을 밝혀주지 못했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무서운 속도로 종이와 멀어지는 사람들을 볼 때면 씁쓸한 심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왜 기자가 되고 싶었을까?'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입사 지원서를 다시 열어봤다. 지원서에는 '기자의 역할' '책임감' '포부' 등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불과 몇 개월 전에 썼던 입사 지원서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중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기자란 안데르센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 나오는 어린이와 같습니다. 임금이 '보이지 않는 옷'을 입고 벌거벗은 채 거리를 행진하지만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그때 한 아이가 '임금이 벌거벗었다!'라고 외칩니다. 그제야 어른들도 쑥덕입니다. 어린이처럼 진실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 사람들이 쑥덕이도록 도와주는 기자가 되고자 합니다."
필요한 건 '위기감'이 아닌 '책임감'이었다. 현실에 가려 해야 할 일을 잊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정보가 넘쳐날수록 정확한 정보, 깊이 있는 정보가 필요하다.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을 들어 이를 전달하는 역할도 필요하다. 바로 기자의 몫이었다. 신문의 진짜 위기는 기자조차도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에 눈을 감을 때가 아닐까.
이제 갓 '수습 딱지'를 뗀 내가 제대로 된 기자 몫을 하려면 아직 멀었다. 그런 의미에서 10년 뒤를 일깨워주는 기사에 감사했다. 야속했던 그 기사를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기사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지금은 10년 뒤를 걱정할 때가 아니라 어린이의 눈으로 진실을 바라보는 능력을 기를 때다. 위기감에 휩싸여 책임감을 잃는다면 이 기사는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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