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녹색 생명 넘치는 풍경화…내 인생의 잔상"
신도순(55·대구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 씨. 그는 팔과 다리 등 근육이 위축되는 병을 앓고 있는 장애인이다. 그는 틈만 나면 그림을 그린다. 가장 하고 싶은 말을, 가장 끓어오르는 감정을, 가장 강조하고 싶은 마음을 화폭에 담는다. 작품을 완성한 뒤 사인을 할 때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 들 만큼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다.
◆화폭에 자연색을 입히다
그는 유화를 그린다. 소재는 '풍경'이다. 하늘과 산, 들, 강, 일출'일몰, 단풍, 숲, 나무 등 자연 일색이다. 산과 들판이 캔버스 속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강이나 바다를 끌어들이기도 한다. 정겨운 시골집과 돌담, 강가에서 고기 잡는 어부도 가끔 등장한다. "구체적인 풍경이 아니라 제 마음속에 남은 잔상, 풍경들이지요. 지나갈 때 보았던 하늘과 들. 만개해서 내 시선을 사로잡았던 꽃, 혹은 열매가 머릿속에 각인되었는데, 그걸 그린 것입니다." 그에게 장소는 색으로 기억된다. "내 어릴 적 김천은 생명의 기운이 넘치고 붉은색과 초록색이 넘실대던 곳이었어요. 봄이면 만산홍, 여름이면 초록과 물색이 지천이었습니다."
신 씨는 초록이나 녹색을 많이 사용한다. "녹색과 초록은 쓰는 이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지만 보통 생명을 찬미하는 색이잖아요.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닌데 작품을 보니 많이 썼네요."
신 씨는 일주일 한두 번 복지관에 나가 그림을 배우고 그린다. 주말에는 집에서 그림 삼매경에 빠진다. "푹 빠져요. 그러면 온갖 시름도 잡념도 잊혀져요. 그림 그리는 자체도 즐겁고 행복하지만 그 과정이 재미있어요. 스케치한 것에 내 생각을 얹어 채색하면 나의 세계가 그려져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지요. 몸이 따라주지 않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니 엔도르핀이 막 생겨나요."
큰 그림을 그릴 때는 불편한 몸이 따라주지 않아 캔버스 위 아래, 좌우를 오가며 그린다. 그래서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도 행복합니다."
9년 동안 그림을 그리면서 영광도 있었다.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에서 특선을 하는 등 크고 작은 대회에서 입상했다. 또 수차례 전시회도 열었다.
◆6남 1녀 외동딸, 그리고 장애인
신 씨는 6남 1녀 중 외동딸이다. 위로 오빠가 3명, 아래로 남동생이 3명이다. "외동딸이라 부모님 사랑을 독차지했으며 오빠와 남동생의 보호도 받았어요. 그만큼 귀하게 자랐어요."
사랑도 일찍 찾아왔다. 21세 때 현재 남편을 만나 8년 열애 끝에 29세에 결혼했다. 결혼 2년 만에 힘들게 아들을 낳았는데, 출산하면서 근육의 퇴행과 위축이 진행되는 난치병을 얻었다. 힘들게 걷다가 현재는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그때 생각해낸 것이 그림이었어요. 제가 어릴 때 꿈이 화가였거든요."
장애인미술협회에 직접 찾아가 그림을 배웠다. 금방 빠져들었다. 행복했다. "저는 특별나게 잘하는 게 없어요. 남들은 공부를 잘해서 좋은 직장 갖고 살아간다지만, 저는 그림 그리는 것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림을 그리고 나면, '나도 뭔가 한 가지를 이루었다!' 하는 그런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림이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줬어요."
◆앞으로
신 씨는 풍경을 주로 그렸다. "앞으로 비구상에 도전하려고요. 추상화를 그리고 싶어요.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개인전도 열고 싶어요. 욕심을 안 내려고 하는데 자꾸 욕심이 나네요. 하지만 무리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깨달은 것도 많았다. "삶은 계획대로, 마음먹은 대로만 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더욱 단단해지고, 성숙하고, 너그러워져요. 그림이 그것을 깨닫게 해줬어요."
신 씨는 남편과 아들이 고맙다고 했다. "어릴 때는 오빠와 남동생들의 사랑과 보호를 받았는데, 이제는 남편과 아들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제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 남편 역시 붓을 잡고 서예를 하거나 난을 쳐요. 아마 제가 지루할까 봐 그런 것 같아요."
남편을 쳐다보는 신 씨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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