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자주 지나다니는 길목에 위치한 동물병원엔 그곳에서 살고 있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있다. 그래서 늦은 저녁 무렵, 그 병원 앞을 지나가다 보면 몇몇은 늘 문 앞까지 쪼르르 달려나와선 유리문 밖에 서 있는 나와 눈을 마주치곤 한다.
최근 들어 체셔 체구의 반만 한 동글동글한 강아지 두 마리가 생겼다. 종종걸음으로 뛰어나와 꼬리를 살랑대는 강아지들의 귀여운 모습에 반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녀석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기곤 한다. 필자가 이 자그마한 강아지들을 처음 만났던 날, 집에 오자마자 바로 그 강아지들 이야기를 꺼냈다. 체셔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자그마한 체구의 복슬복슬한 하얀 강아지들이 너무 귀여웠다며 너스레를 떨었더니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듣던 오빠가 한마디 했다. "그렇게 작고 귀여운 강아지들이 많아서 주변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이 우리 집 고양이들을 보면 '고양이가 왜 이렇게 크냐'고 하는구나"라고.
그 말을 듣고 난 후 생각해 보니 확실히 우리 집 고양이들이 보통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아담하고 귀여운 소형견들에 비해서 덩치가 '크긴 크구나' 싶었다. 심지어 요즘은 체셔보다 여리고 작은 체구로 우리 집에서 아담함과 귀여움을 담당하던 앨리샤마저 나이를 먹어가면서 체셔와 점점 비슷한 덩치로 자라고 있다. 그래서 두 마리 모두 자그마한 강아지들에 비해 체구에서 풍기는 귀여운 느낌은 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이와 덩치를 논외로 한다면, 다른 관점들에선 분명 우리 집 고양이들도 그에 못지않은 귀여운 면모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우선 앨리샤의 귀여움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애교이다. 앨리샤의 애교는 늘 적재적소에서 발휘되곤 한다. 도도도 소리를 내면서 장난감을 물고 뛰어와서 내려놓고 놀아달라며 아웅 거릴 때나 내 앞에서, 가족들 앞에서 철퍼덕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털썩 누워서 발라당 거리며 애교부릴 때의 그 목소리와 모습은 앙증맞은 강아지의 꼬리 흔드는 모습 못지않게 너무나도 귀엽다. 앨리샤와 달리 애교가 없는 편인 체셔는 단지 자신의 외양으로 귀여움을 보여준다. 타고난 골격에 맞게 다른 고양이에 비해 크긴 하지만 도톰하고 복슬복슬한 털로 감싸진 녀석의 발은 볼 때마다 안 만지고는 못 배길 정도로 귀엽다. 그리고 양 볼에 잔뜩 자라난 털 역시 체셔의 귀여움에 한몫한다. 엄마에겐 일명 '심술보 털'이라고 불리는 보송보송한 그 털들은 체셔의 볼을 마치 입 안에 견과류를 잔뜩 물고 있는 다람쥐의 볼처럼 볼록하고 도톰하게 보이게 해 준다. 그 뿐만 아니라, 살짝 뚱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왠지 그 안에 '심술'이 가득 담겨 있을 것만 같아서 다소 짓궂거나 제멋대로이지만 그래도 매력 있고 귀여운, 만화 속 심술쟁이 캐릭터 느낌까지 들게 해 준다. 사실 '귀엽다'는 말은 상당히 주관적인 느낌이다. 특정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반려인의 입장에서만 혹은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만 동일하게 '귀엽거나', 혹은 그렇지 않거나이다.
반려동물이 불특정 다수에게 모두 귀엽게 느껴지는 대상일 수도 있지만 반려동물의 종에 따라 정말 몇몇에게만 귀엽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존재일 수도 있다. 체셔와 앨리샤 역시 내겐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귀여운 고양이들이지만, 녀석들의 덩치도 덩치고 나이도 나이인 만큼 굉장히 주관적인, 오로지 '우리 가족들만이 느끼는 귀여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녀석들은 충분히 귀엽다. 물론 녀석들이 지금보다 나이가 조금 더 들게 된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귀여운 모습들이 조금 더 사라질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된다면 또 지금과는 또 다른 귀여운 모습들이 내게 보일 것이다. 지난 8년간 체셔와 앨리샤의 덩치가 커지고, 나이가 들어도 꾸준히 내겐 귀여웠듯이 말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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