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시골 할머니댁에 가면 녹슨 펌프 샘을 볼 수 있었다. 뜨거운 여름날, 갈증을 해소하려 펌프 샘에 달려가 팔짝팔짝 뛰어오르며 펌프질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펌프 샘은 바짝 말라선지 물줄기는커녕 건조한 열기로 나를 지치게 했다. 결국 할머니가 건네주는 한 바가지 마중물로 다시 짚을 썰어대듯 펌프질을 했을 때, 기적처럼 시원한 물을 퍼올린 장면이 떠오른다.
세월이 흐른 지금 필자는, 갈등부부 상담에 이 지혜를 적용한다. 부부가 한집에 산다고 다 부부가 아니란 건 그들을 통해 일찍 깨닫게 되었다. 의미 있는 부부란 상대가 원할 때 언제든지 그 당연한 '사랑'을 주는 것이며 그렇게 할 때, 부부는 비로소 끝까지 함께하고 싶은 것일 게다. 그러나 배우자를 사랑하는 법을 모르면 상대에게 언제,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부부가 많다. 이들은 대체로 자기중심적이며 배우자의 헌신과 인내만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을 때 어느 날, 갑자기 해고당해 망연자실해진 회사원처럼 상대 배우자로부터 이별 통고를 받는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 이별 통고의 차가운 판단은 헤어지는 게 목적이라기보다는 실망하고 서운했던 것에 대한 강력한 표현이며 스스로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다. 공격을 받은 다른 쪽의 배우자는 난감해하며 도움을 청한다.
그럴 때, 필자는 '펌프 샘의 마중물 얘기'를 찬찬히 건넨다. 예상대로 그들은 탄성을 지르며 방법을 찾은 듯 무릎을 친다. 아직도 아내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사랑의 가능성을 뿜어내려면, 그간 잘 사용하지 않았던 '남편의 새롭고 강력한 사랑'의 마중물을 붓는 그 기적 같은 희망의 과제에 말이다. 흔히, 이혼 위기의 부부들이 집단상담 형태로 필자와 상담치료를 할 때 이들도 우물처럼 깊은 무의식적 기억의 창고에 담긴 마음의 재료를 건져내는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부부가 눈길을 마주하며 공유했던 추억을 떠올려 '마음의 대화'를 나누게 하면, 놀랍게도 그것이 두 사람 사이에 '마중물'이 되어 숨은 애틋한 감정의 물줄기로 역류되어 울음으로 부둥켜안는 모습을 보인다. 이때, 필자는 사랑의 갈등을 놓고 날마다 치열한 전투경험을 해 온 부부가 갈등 없이 살아온 부부보다 서로 마음의 끈을 놓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한 번 더 배우게 된다.
김미애 대구과학대 교수 대구복지상담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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