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00일…잊지 못할 '희생', 잊혀지는 '안전'

입력 2014-07-24 11:33:20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뒤흔든 세월호 침몰 참사가 24일로 사고 발생 100일을 맞았다. 세월호 참사는 국민들을 집단적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 빠지게 했다. 또 도처에 똬리를 틀고 있는 안전불감증과 후진국형 재난 시스템, 허술한 사회체계와 부조리 등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뼈 아픈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개조를 해야 한다는 자성론도 제기됐다. 하지만 세월호 특별법, 정부 조직 개편 등의 후속 대책은 아직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

◆후진국형 참사에 휘청댄 대한민국

무려 304명(사망 294명'실종 10명)의 희생자를 낳은 대참사는 대한민국을 부끄럽게 했다.

세월호 수색구조 작업에서 드러난 해양경찰청의 부실 대응과 무기력은 국민의 공분을 샀고,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은 '해경 해체'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해경은 창설 61년 만에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비운을 맞게 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국민에게 눈물을 훔치면서 사과 담화를 발표했고, 정홍원 국무총리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가 지난달 26일 유임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참사로 드러난 부정과 비리는 '관피아'(관료+마피아)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대통령까지 나서 공직사회 적폐(積弊'오랫동안 쌓인 폐단)를 도려내야 한다고 외쳤고, 이번 기회에 공직 사회를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급기야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안)과 '안대희법'(전관예우 금지 및 공직자 취업제한 강화법안) 등이 주목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 후 올해 상반기 각급 학교의 수학여행도 전면 취소됐다. 교육부는 참사 두 달 만에 수학여행을 전면 허용하면서 안전대책도 내놨다. 소규모 테마형 수학여행 활성화와 수학여행 전 숙박 및 체험시설 안전점검 시행, 안전요원 배치 등의 시행 방안을 마련했다. 참사 이후 국민의 소비심리가 더욱 위축되면서 경기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숙연한 사회 분위기로 여행 및 행사가 잇따라 취소되는 등 내수경기가 바닥을 치면서 경제 주체들이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여행'행사 분야 영세업체들은 생존의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대구의 한 행사업체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여파로 6'4 지방선거에도 일거리가 확 줄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너무 조용하다"며 "가을쯤 다소 회복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여파로 올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도 당초 전망치보다 낮아질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4월 전망치에서 0.2%포인트 낮은 3.8%로 조정했다.

참사는 대한민국을 '분노와 눈물의 바다'로 만들었다. 국민은 세월호 실종자 가족이나 유가족들의 안타깝고 슬픈 모습을 보면서 집단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생존자 구조 소식은 없고 연일 사망자 수만 더해지면서 무기력감이나 허탈감, 분노 등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많아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반성'점검했지만, 대형사고 계속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이 세월호 참사로 인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허술한 안전 및 소방점검이 숱하게 지적되면서 관련 당국들이 긴급 점검에 나서고 안전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안전 의식을 높여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점검을 하고 다짐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세월호 참사 발생 한 달여 만에 발생한 고양종합버스터미널 화재를 비롯해 전남 장성 요양병원 화재, 서울지하철 열차 추돌 사고 등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공하성 교수는 "소방훈련이나 점검 등을 예전보다 많이 하는 것 같지만 아직 많은 시민들이 훈련을 단순히 훈련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안전에 대한 인식 변화가 그만큼 더디다는 방증이다. 관리당국도 안전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고 평가했다. 공 교수는 또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인재가 발생했는데도 효과적인 대응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가면 제2의 세월호 참사가 다시 발생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비판에 몰린 정부는 안전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밀어붙이기식 대책만 내놨다는 지적도 있다.

◆후속 대책 마련 난항

세월호 참사 이후 국회 차원의 각종 법안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얽매여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세월호 특별법'이다. 여야가 최우선 입법 과제로 꼽은 세월호 특별법은 진상조사위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문제를 놓고 여야가 부딪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진상조사위에 수사권을 가진 특별사법경찰관을 두어 조사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새누리당은 "특별사법경찰관이 형사법 체계를 흔드는 것은 물론 전례가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여야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 중인 만큼 조속히 협상을 타결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고 있지만, 서로 입장 차가 커 협상 타결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와 관련 법안은 소속 상임위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국가개조'를 내세워 국회에 제출한 정부조직법도 여야가 다음 달 국회에서 논의해 처리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 정도다.

정부조직법은 정부안과 야당안이 충돌하고 있어 국회 입법이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안은 국무총리 산하 국가안전처에 각 부처로 흩어진 안전 관련 기능을 통합하는 한편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을 해체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소방방재청 해체와 관련해선 논란이 많다. 한 소방공무원은 "소방관들은 재난이 발생하면 현장에서 활동하는데 여전히 인력 부족과 장비 노후 등으로 어려움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소방방재청이 국가안전처로 흡수돼 행정조직의 간섭을 받다 보면 독립성이 훼손되고 소방관들의 의욕을 떨어질 것이다. 또 지휘체계에 혼선을 야기해 효율적인 재난 대처가 될지 의문이다"고 했다.

국회 정무위에 계류된 일명 '김영란법'도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여야는 대가성 및 직무관련성과 상관없이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챙긴 공직자를 형사처벌한다는 원안에는 뜻을 같이하고 있지만 형사처벌 대상 공직자의 범위를 두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범죄은닉재산환수강화법안인 '유병언 법' 등도 논의 진행 과정에서 법 적용 범위나 처벌 수위 등에 대한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참사 100일이 지났는데도 세월만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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