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국비의 딜레마

입력 2014-07-23 07:50:37

매년 이맘때이면 대구시는 국비와의 전쟁을 치른다. 물론 다른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대구시가 국비 확보에 '올인'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시민의 입장에서는 국비 확보 규모가 대구시정 평가의 가장 중요한 척도이기 때문이다.

대구시는 작년에도 그랬듯이 올해도 국비 3조원 이상 확보라는 마지노선을 정해놓고 시장과 전 공무원들이 불철주야 뛰고 있다. 국비 확보에 대한 부담은 지역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국비 확보가 저조하면 국회의원들도 그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4년여 동안 대구시 감사관으로 근무하면서 바라본 필자의 눈에는 양적 위주의 국비 확보 모습이 좋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시가 국비를 확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행정력에는 한계가 있다. 전액 국비로만 추진되는 사업은 없다. 국비를 받아오면 지방비를 매칭해야 된다. 게다가 사업의 목적이 기관이나 시설물일 경우 그 운영비는 대부분 지방비로 부담해야 된다.

제한된 행정력 범위 내에서 국비 규모가 지역발전에 기여하는 효과와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다.

지방이 양적 위주로 국비 확보 전략을 추구할 수밖에 없도록 부추기는 것이 또 있다. '중앙집권적 재정분배제도'이다.

중앙부처는 자체적으로, 또는 지방과 연계해서 사업을 만들고 필요한 예산을 기획재정부에 신청한다. 지방은 지방에 필요한 사업을 계획해서 해당 중앙부처를 통해 재정부에 신청한다. 재정부 심사를 거친 예산안은 국회 승인을 통해 국가예산으로 확정된다. 이와 같은 국가재정의 분배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지방논리, 중앙부처논리, 정치논리가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국가재정분배시스템으로는 예산 사용의 대원칙인 효과성, 효율성, 경제성을 보장할 수 없다.

문희갑 전 대구시장과 홍철 전 대구경북연구원장이 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들은 대한민국이 제2의 도약을 위해서는 '재정의 완전한 지방분권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지금과 같은 중앙집권적 재정분배시스템으로는 국가재정을 최적으로 사용할 수 없기에 그 대안으로 재정의 완전한 지방분권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가재정분배제도가 하루아침에 바뀔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문희갑 전 시장은 대통령이 재정의 완전한 지방분권화의 필요성을 인식한다 하더라도 관료집단과 정치집단의 이해관계에 가로막혀 국가재정분배제도를 바꿀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에서 국비 확보와 관련해 대구시가 선택해야 할 길은 무엇인가.

양 위주의 국비 확보전략에서 질 위주로 변해야 한다. 양적 기준으로 국비를 확보하기 위해선 SOC 등 대형 건설사업 위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물론 SOC 등도 지역발전에 필수요소다.

그러나 예산 사용의 효과적 측면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의 예산으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사업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경제나 문화분야 등 수십억원 규모의 프로그램을 계획해 국비를 받아내고 그 사업을 내실있게 추진한다면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국비사업보다 지역발전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타지방은 양적 위주의 국비전략을 추구하고 있을 때 대구시가 선제적으로 프로그램 위주의 국비 확보 전략을 구사하면 중앙부처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구시의 과감한 선택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구시민의 표를 헤아리는 정치인 시장이 국비 확보 전략을 질적 위주로 변화시키기는 참으로 어렵다.

따라서 대구시의 국비 확보 딜레마에 대해 시민사회의 이해가 절실히 요구된다. 양적 위주로 국비를 확보하라는 시민의 요구는 규모는 작지만 더 좋은 국비사업을 발굴해 실질적으로 대구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김범일 전 시장은 3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 어느 간부회의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양보다 질로 가자." 김 전 시장의 말은 40여 년 동안 공직생활을 하면서 국비와 관련해서 얻은 진정한 소회로 보였다. 지방이 중앙집권적 재정분배제도의 볼모가 되어 지방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양적 위주의 국비 확보 전쟁은 그만 하고 작더라도 지방에 절실히 필요한 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하자는 것이다.

대구시는 이제 '국비 3조 마지노선'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질적 위주의 국비 확보 전략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강병규/세영회계법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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