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자두나무의 교훈

입력 2014-07-19 08:00:00

프랑크푸르트가 속한 독일 헤센주의 법에 이런 규정이 있다. 자두나무처럼 생육이 빠른 과실수를 일반 주택에서 심을 때 반드시 담장 2m 안쪽에 심어야 한다. 담에 바짝 붙여 심을 경우 이웃집으로 가지가 뻗어 그늘을 만들거나 낙엽 등의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수종별로 담장과 얼마만큼 간격을 두고 심어야 하는지 세세히 규정돼 있는데 만약 이웃집에서 가지를 치라거나 옮겨 심으라고 요구하면 따라야 한다.

그런데 5년 넘은 나무에 대한 규정은 다르다. 나뭇가지가 담을 넘어와도 이웃이 간섭할 수 없다. 일정 수령이 넘으면 설령 개인적인 피해를 입더라도 나무가 우선이다. 김영찬 한국은행 전 프랑크푸르트 사무소장의 '독일견문록'의 내용인데 사택 정원 내 어린 자두나무를 옮겨 심어야 했던 에피소드에서 우리 통념과는 다른 독일인의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다.

독일 사람들은 타인에게 작은 피해라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사고가 강하다. 여기에는 국민성도 한몫하겠지만 사소한 부분이라도 철저히 법이나 관습으로 규정하고 이를 따르는 사회적 공감대가 넓기 때문이다. 소음방지 규정도 퍽 재미있다. '정숙시간대'(Ruhezeit)라는 것이 있다. '조용한'(ruhe) 시간 즉 평일 오후 10시부터 이튿날 오전 7시까지, 오후 1시부터 3시까지는 가급적 소음을 내서는 안 된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하루종일 큰소리를 내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정숙시간대에 소음을 내다 고발당하는 일도 있다니 방해받지 않을 권리와 방해해서는 안 되는 의무감이 철저한 듯싶다.

유명 사진작가가 울진 국유림 내 아름드리 소나무를 제멋대로 베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탄이 거세다. 5년생 자두나무도 아니고 수백 년 된 희귀 금강송을 베어내 사진과 맞바꾼 작가의 발상도 놀랍지만 모두가 지키고 보호해야 할 공공재에 가해진 무참한 테러가 기가 찰 일이다.

천연기념물 지정을 늦잡치며 보호수를 지키지 못한 당국도 한심하고 법원의 처분도 우습다. 고작 사진 한 점 값에 불과한 벌금 500만 원이라니 차라리 곤장 100대로 다스린 조선시대였다면 속이나 후련했을 터다. 현행법 규정이 독일이나 조선시대와는 다르니 판사만 나무랄 수는 없다. 600년 세월을 버텼지만 독일 자두나무보다 못한 대접을 받은 대왕송 신세만 안쓰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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