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하나뿐인 작품, 이니셜 새겨 선물했죠…김의정 기자 가죽공예 도전기

입력 2014-07-19 08:00:00

본지 김의정 기자가 두꺼운 모눈종이 위에 패턴을 그리고 있다.
본지 김의정 기자가 두꺼운 모눈종이 위에 패턴을 그리고 있다.
로비니 가죽 공방 김세훈 대표의 도움으로 망치 사용법을 익히고 있다.
로비니 가죽 공방 김세훈 대표의 도움으로 망치 사용법을 익히고 있다.
가죽을 클램프에 고정시켜 양손으로 바느질하는
가죽을 클램프에 고정시켜 양손으로 바느질하는 '새들 스티치'를 하고 있다.
바느질과 마감처리가 다소 어설프지만 친구에게 감동을 주기에는 충분한 명함지갑.
바느질과 마감처리가 다소 어설프지만 친구에게 감동을 주기에는 충분한 명함지갑.

D.I.Y.(Do It Yourself), 내 손으로 직접 물건을 만드는 일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마트에 가면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물건을 살 수 있고 직접 만들었을 때 재료비가 더 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직접 만들어본 물건이라고는 고등학교 가정 시간에 만들어본 필통이 전부였다. 비록 최하점을 받았지만 'D.I.Y.' 매력 한 가지는 느꼈다. 바로 '실용성'이다. 파는 물건보다 품질은 못해도 직접 만든 필통을 지금까지 쓰고 있다. 쓸 때마다 자랑도 빼먹지 않는다. 울퉁불퉁 못났어도 8년째 쓰고 있는 필통은 주변 사람들과의 좋은 이야깃거리다.

그래서 다시 도전했다. 지난번 '업사이클링'을 취재하며 도전했던 '주머니 만들기'(본지 6월 14일 자 11면)가 바느질 트라우마 극복하기 1탄이었다면 이번에는 그 2탄이 되겠다. 2탄은 좀 더 진화한 '가죽공예'다. 고급스러운 가죽, 세련된 디자인으로 실용성 있는 가죽 명함케이스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트라우마 극복을 넘어 이번에는 D.I.Y.를 취미로 삼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안고 가죽 공방 문을 두드렸다.

◆가죽, 그리고 도구들과 친해지기

9일 오후 2시, 대구시 남구 대명동에 위치한 로비니 가죽 공방에 들어서자 가죽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공방 한쪽에 쌓여 있는 가죽 재료들이다. 이탈리아 수입 식물성 가죽에서부터 뱀가죽, 악어가죽까지 다양하다. 공방 한가운데 놓인 작업 테이블에는 망치, 송곳, 칼 등 다소 살벌해 보이는 도구들이 진열돼 있다. 공방 대표이자 수강생들을 가르치는 김세훈 씨는 "완성된 가죽 제품들이 우아해 보이지만 만드는 과정은 결코 우아하지 않다"고 겁을 줬다.

가죽은 특수 소재이다 보니 공예에 사용되는 도구의 종류도 다양하다. 이 때문에 도구들과 친해지는 게 첫 번째 임무였다. 김 대표로부터 도구 설명을 듣고 남은 가죽 재료를 칼로 잘라보기도 하고 망치로 가죽에 구멍을 내보기도 했다. '오늘 가방 하나 만들어 가는 것 아닌가?' 기술에 익숙해지는 만큼 기대감도 높아졌다. 김 대표는 "사람들이 보통 만들고 싶은 물건 사진을 찍어와 보여주세요. 바로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기초부터 찬찬히 준비해야 해요. 보기보다 육체노동이기 때문에 많이 힘들 것"이라며 들떠 보이는 기자를 긴장시켰다.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할 일은 패턴, 즉 도안을 그리는 작업이다. 두꺼운 모눈종이 위에 만들고자 하는 물건의 단면을 볼펜으로 그린다. 가죽 위에 볼펜으로 그리고 자를 수 없기 때문에 크기를 잰 모눈종이를 틀로 삼아 가죽 모양을 변형시킨다. 가로 10㎝, 세로 20㎝의 직사각형 패턴을 가죽 위에 대고 가죽을 자를 때 사용되는 협도로 가죽을 잘랐다. 사실 몇 번 연습을 했지만 협도 사용엔 익숙지 않아 결국 문구용 칼을 이용해 가죽을 잘랐다. 아슬아슬했지만 기초 단계 완성이다.

◆과감함과 섬세함이 필요한 가죽공예

가죽공예에는 과감함과 섬세함이 모두 필요하다. 각종 도구를 이용해 가죽을 자르거나 구멍을 내면 반드시 부드럽게 다듬는 작업이 뒤따른다. 협도로 자른 직사각형 모양의 가죽은 사방이 거칠었다. 이 거친 부분은 사포로 다듬어준다. 사포질을 해도 여전히 마감이 거칠다. 이때 물이 필요하다. 손가락 끝으로 물을 찍어 테두리에 물을 묻혀준다. 물이 묻은 테두리는 여러 크기의 홈이 있는 나무 봉 '슬리커'로 문지른다. 가죽 두께에 맞는 홈을 찾아 문질러주면 테두리가 둥글어짐과 동시에 광이 난다.

가죽에 맞는 색을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매끄러워진 테두리 위를 마감하는 물감, '엣지 코트'와 바느질할 때의 실의 색깔에 따라 가죽 제품이 풍기는 분위기가 천차만별이다. 기자가 고른 이탈리아 수입 식물성 가죽은 옅은 갈색이었다. 가죽과 어울리는 엣지 코트와 실 색깔을 고르는 데만 긴 시간이 걸렸다. 고심 끝에 카키색 엣지 코트와 같은 색깔의 천연 실을 골랐다.

드디어 바느질 단계에 이르렀다. 두꺼운 가죽은 바늘로 바로 뚫을 수가 없다. 우선 망치와 '취즐'을 이용해 가죽 위에 구멍을 뚫어야 한다. 취즐은 포크 모양으로 생긴 도구다. 가죽 위에 한 손으로 취즐을 고정시킨 다음 망치로 취즐을 내려치면 가죽에 구멍이 뚫린다. 뚫린 구멍에 바늘을 이용해 실을 통과시키면 견고한 바느질을 할 수 있다.

가죽은 일반 천에 비해 두꺼운 만큼 특별한 바느질 기법이 필요하다. 가죽공예에선 주로 새들 스티치를 하는데, 말 안장 바느질을 할 때 탄생한 방법이라고 해서 새들(saddle'말 안장) 스티치라고 한다. 실 양끝에 각각 바늘을 달아 하나의 구멍으로 바늘을 동시에 통과시킨다. 자연스레 실이 두 겹으로 바느질된다.

바느질이 완성되면 모든 과정의 90%는 끝난 셈이다. 이제 단추를 달아주고, 원한다면 이니셜을 새길 수도 있다. 비록 작은 명함지갑이었지만 만드는 3시간 동안은 마치 30년 경력의 장인이 된 기분이었다.

◆초보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가죽공예의 매력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다소 험악해 보이는 도구들을 다뤄야 하고 체력적으로도 힘이 든다. 마지막에는 자연스레 말수도 줄었고 밝았던 표정도 사라졌다. 김 대표도 덩달아 "많이 힘드시죠?"라는 질문을 수시로 했다.

그러나 모든 피로는 완성품을 보자 눈 녹듯 사라졌다. 마지막 단계에서 가죽공예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초보자가 만들었다 할지라도 재료의 고급스러운 느낌 덕분에 완성품의 질이 좋아 보인다는 점이었다.

돌아오는 평가는 냉정했다. 편집국에 돌아와 완성된 물건을 선배들에게 보여줬다. 지갑의 여기저기를 '매의 눈'으로 뜯어본 선배들은 비뚤비뚤한 바느질, 어설픈 마감 처리를 하나 둘 지적 했다. 그래도 실망하기는 일렀다. 친구의 이니셜을 새겨 선물했고, 친구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지갑이라며 기뻐했다. 심지어 자신의 SNS에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했다. 역시,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감동이 있었다. 비싼 수강료를 내고, 비싼 재료를 선택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메고 있던 가죽가방을 눈으로 자세히 뜯어봤다. 제작 과정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도 했다. 이날 공방에서 함께 작업한 수강생 이소라(33) 씨의 말이 떠올랐다. "하루종일 가죽만 생각해요. 가죽공예 안 하고 무슨 재미로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취미란 일상 속에서 무심코 떠오르는, 혹은 생각만으로도 시간가는 줄 모르는 그런 일인지도 모르겠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