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면·검은 이름' 중국의 빛과 그림자…『산시, 석탄국수』

입력 2014-07-19 08:00:00

산시, 석탄국수/서명수 지음/나남 펴냄

'중국의 지난 100년을 알고 싶다면 상하이를, 1천 년을 알고 싶다면 베이징을 보라. 그러나 중국의 3천 년을 알고 싶다면 산시(山西)를 보라.'

중국 산시(山西) 사람들이 즐겨 하는 말이다. 중국 3천 년의 역사가 산시의 이야기와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큰 그림을 그리면서 구체적으로 산시를 들여다볼 수 있을까? 이 책 '산시, 석탄국수'는 국수와 석탄, 그리고 산시 사람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산시를 소개한다.

산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는 물론이고 정치와 경제, 역사와 평범한 산시 사람의 일상까지 두루 아우른다. 인기리에 방영된 EBS '세계테마기행'의 산시편, '5천 년의 시간여행, 중국 산시성'의 진행을 맡았던 지은이는 "방송에서 못다 한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이 책에 담았다"고 밝히고 있다.

산시 탄광 노동자의 검은 손이 만든 석탄국수, 그 이면에는 중국의 경제성장에서 낙오한 서민들의 이야기가 있다.

산시는 중국 누들로드의 기원이며, 값싸고 맛있는 서민 음식인 국수의 본고장이다. 한국의 '김밥천국'만큼이나 중국 전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산시면식'(山西麵食)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산시 사람들이 베이징에 와서 가장 쉽게 시작하는 일이 국수식당이다. 그들은 늘 국수를 먹었고, 국수는 중국인의 사랑을 받기 때문이다.

산시는 황토고원지대라는 지리적 특성상 밀가루를 주식으로 삼았다. 게다가 중국 최대의 석탄 산지여서 산시 사람들은 석탄을 오래전부터 연료로 사용했고, 석탄의 강한 화력 덕분에 면발을 빨리 삶아낼 수 있게 되었다. 산시국수가 중국 전역에서 대중화된 것은 산시의 지역적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산시국수가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석탄의 역할이 결정적이었고, 그래서 석탄국수라는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하얀 면에 아이러니하게도 검은 '석탄국수'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은유하듯, '석탄국수'를 들여다보면 '중국의 흰 얼굴'과는 다른 '산시의 검은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산시는 중국에서 손꼽히는 오지다. 석탄 채굴이 주요 산업인 산시는 수도 베이징을 비롯해 주변 대도시에 전력을 공급하는 '석탄대성'(石炭大省)이자 중국 경제발전의 동력기지다. 그러나 정작 산시 사람들은 제한 송전과 전력난으로 불편한 일상을 감내하고 있다.

탄광의 안전설비는 형편없어서 매년 탄광사고로 목숨을 잃는 광부의 숫자가 줄어들지 않는다. 하루 종일 좁고 어두운 지하 갱도에서 목숨을 걸고 석탄을 캐는 수많은 광부들. 그들에게 짧은 시간에 조리할 수 있는 값싼 국수야말로 최적의 음식이었던 것이다. 광부의 '검은 손'이 캔 석탄의 화력으로 완성된 국수를 다시 그 '검은 손'으로 먹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산시의 석탄국수가 담고 있는 슬픈 이야기이자 산시의 민낯이며 나아가 빛의 속도로 성장하는 중국경제의 이면이다.

지은이는 책에서 중국 경제성장의 힘찬 원동력이자 검은 이면인 산시에 대한 끝없는 애정과 믿음을 드러낸다.

"산시 사람들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한번 맺은 신용을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신의로 과거 중국 금융시장을 제패했습니다. 산시 진상(晉商)이 그들입니다.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산시의 국수만큼이나 산시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산시 상인들은 광둥 상인이나 저장 상인들과 함께 화교 상인을 대표하는 집단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이 책은 국수이야기로 시작해 중국의 3천 년 역사와 현재, 중국 경제성장의 이면까지 흥미롭게 안내한다.

지은이 서명수는 24년간 기자로 일했다. 기자생활 대부분을 정치판에서 보냈다.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했지만 1998년 남북고위급회담 취재차 따라간 중국에서 밤늦게 택시를 탔다가 강제로 베이징 뒷골목 투어를 하게 된 인연으로 중국 전문기자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부인도 작가 겸 PD로 중국에 정통하다. 중국전문커플인 셈이다. 지은 책으로 '인민복을 벗은 라오바이싱' '허난, 우리는 요괴가 아니다' 등이 있다.

221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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