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대학에 합격한 뒤 방을 구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갈 무렵, 마침 학과 게시판에서 룸메이트를 구한다는 한 선배의 글을 보게 되었다. 바로 위 학번 선배의 글이었는데, 내 맘을 휘어잡은 것은 마지막에 붙어 있던 'P.S'의 글귀였다. '고양이가 한 마리 있으니 고양이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더욱 환영합니다.'
연락을 하고 찾아간 선배 언니의 집에서 만난 고양이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도 슬쩍 다가와 다리 언저리를 스치며 인사할 정도로 사교적인 녀석이었다. 게다가 매끈하고 보드라운 하얀 털을 가진 미묘(美猫)였다. 그 덕분에 그날 필자는 선배네 집이 살기에 좋고 나쁘고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하얀 고양이가 정말 예쁘구나'란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남아버렸다. 그리고 그때 기억 때문에 체셔와 함께 살기 시작한 이후에도 종종 혼자 상상해보곤 했었다. '체셔의 크림색 털이 하얀 털이었다면, 어쩌면 지금보다 더 예뻤을지도 몰라' 하면서. 하얀 털만이 아니라 체셔가 지니지 못한 멋쟁이 턱시도를 걸친 고양이나 달콤한 치즈태비를 몸에 감고 있는 노란둥이, 아니면 반짝거릴 것만 같은 은빛 갈기와 같은 은빛 털로 몸을 감싼 고양이들을 볼 때면 하나같이 예쁘긴 매한가지였다. 물론 그 어떤 예쁜 빛깔을 가진 고양이라 해도 체셔와 바꿀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다양한 털 색 중에 얼굴에 짙은 빛깔을 가진 경우엔 썩 내키지 않았다. 짙은 얼굴의 대표주자라는 샴고양이의 경우엔 실제로 본 적은 없고 오직 사진으로만 접하긴 했었지만 묘하게도 보는 사진마다 검은 얼굴에 가려진 이목구비에 인상이 흐릿했거나 또는 조금 심술궂어 보였다. 그래서 샴이 사람을 좋아하고 사교성이 좋은 성격이라는 글들에 '생긴 것과 다르게 성격은 좋은가 보다' 하고 여겼을 따름이다.
우습게도 처음 앨리샤를 봤을 때는 얼굴이 까맣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했었다. 처음 마주했을 땐 앨리샤의 고롱거리는 소리와 하늘빛 눈망울, 그리고 품 안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이 내가 받은 앨리샤의 첫인상이었다. 그래서 함께 집으로 온 후 처음으로 앨리샤의 사진을 찍던 그제야 난 녀석의 얼굴이 내가 '별로'라고 여겼던 그 짙은 색 얼굴임을 알았다. 이상하게도 그냥 봤을 땐 조금 짙었던 얼굴이 사진만 찍으면 더 새까맣게 변신해 버렸다. 그렇게 몇 차례 사진을 찍고 지우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난 여태껏 내가 봐 왔던 짙은 얼굴의 고양이 사진들이 왜 그렇게나 심술보로 보였는지 알 수 있었다. 단지 '지독히도' 사진발을 받지 못한 것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되도록이면 많은 사진을 찍어 남겨놓고 싶었기에 열심히 찍었고, 그중에 절반 이상은 앨리샤의 짙은 얼굴 빛깔 때문에 얼굴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사진에선 잘 볼 수 없지만 앨리샤는 깜짝 놀라면 커다랗고 동그란 겁 먹은 토끼 눈이 되기도 하고, 햇살이 비치면 표범의 그것처럼 날카로운 맹수의 얼굴이 되기도 한다. 장난을 칠 때면 반질거리는 개구쟁이의 표정 그 자체이고, 심통이 났을 땐 한없이 심술궂은 밉상 표정이다. 또 애교를 부릴 땐 바로 가서 끌어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고, 아프거나 예민할 땐 낯선 차가운 표정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가끔은 마치 사람 얼굴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앨리샤가 가진 표정은 정말이지 다양하다. 그래서 짙은 얼굴 속에 표정이 가려지기에 좀 더 확실하게 의사 표현을 하기 위해 표정을 더 분명하고 다양하게 나타낼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그 덕분에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고, 함께 지내는 우리 가족들의 기억 속엔 늘 한가득 담겨 있다. 짙은 얼굴 때문에 더욱 매력적인 앨리샤의 모습과 함께 녀석의 생동감 넘치는 표정들이 말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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