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밑천은 신랑측 돼지…15살 신부에겐 이미 10개월 된 아기도
◆산신제 풍경
찡쯩리가 어디를 같이 가자고 하는데 알 수가 없다. 술을 먹는다는 시늉을 하는 걸 보니 무슨 행사가 있는 모양이다. 우리의 대화는 늘 이런 모습이다. 몽족어와 한국어, 거기에 영어까지 통하지 않으니 고릴라들처럼 가슴을 치지 않으면, 서로의 눈빛으로 적당히 알아먹어야 한다. 마을에서 10분여 벗어나니 오토바이 몇 대와 미니 트럭이 줄지어 서 있다. 숲길을 따라 들어가니 벌써 사람들의 소리로 왁자하다. 바쁜 발걸음을 잠시 묶어놓고 그들을 바라본다. 입구에서 쫌갱이 오늘 재물로 쓸 돼지의 발을 묶다 반갑게 나를 부른다. 치앙다오에 사는 스낭도 새 아빠 집에 왔는데 그는 도시에서 적응이 잘 안 되는지 자주 온다.
후아이 펑 까오에 사는 깔리양 목사와 치앙마이에서 신학교에 다닌다는 25살의 청년 둘도 와 있다. 한 사람은 몽족이고 또 한 사람은 깔리양 청년인데, 3년 후에 목사가 된다고 한다. 옆에서는 기다란 칼로 상당히 굵은 나무를 탁탁, 몇 번 치니 금방 넘어간다. 차일롱이 날렵하게 반으로 잘라 다듬더니 금방 단단한 십자가 두 개를 만들어 나무에 못으로 박는다. 칼등 그 좁은 폭으로 치는 데도 한 번의 실수도 없이 기가 막히게 박는데, 오랜 연륜이 묻어 나온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이가 시릴 정도로 청량한 오지 산속의 바람과 섞여 나무 끝을 살랑거린다. 마침내 목사의 진행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를 시작한다. 그것이 끝나자 타이 말을 모르는 30대 후반 이상의 사람들을 위해 몽족 신학생이 다시 몽족어로 기도를 올리고, 이어 목사의 선창으로 찬송가를 부른다. 외롭고 바라는 것 작은 그들에게 하느님이 깊은 사랑과 행복이 깃들기를 같이 기도한다.
예배가 끝나고 돌아서자 스낭이 기다란 칼을 들고 단번에 돼지를 잡는다. 물과 산에 경배를 드리는 성스러운 산신제. 그러나 인간의 제례에는 오랜 옛날부터 항상 제물로 이런 살아있는 것이 들어갔으니, 꼭 이러해야 되는지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 가운데 포장을 깔고 마을 사람들이 돼지를 손질하고 청년들이 작은 개울가로 가져가 씻는다. 그새를 참지 못해 누군가는 대나무에 곱창을 칭칭 감아 장작불에 굽고 또 누군가는 타이 위스키병을 땄다. 마땅한 잔이 없으니 바나나 잎을 동그랗게 싸 잔을 만들어 돌린다. 금방 고기가 익어 나오고 분위기는 흥청거려진다. 장작불 위에는 듬성듬성 썰어 끼워놓은 꼬치들이 금방 가득해지고 솥뚜껑도 숨 가쁘게 들썩거린다. 산신령은 강림하셨는지, 아니면 이 근처 어디쯤에서 호랑이를 타고 이 지상의 백성을 내려다보고 있는지, 사람들의 웃음소리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울려 퍼진다.
◆후아이 펑 마이 마을의 몽족 결혼식
몽족의 결혼식은 다소 독특하며, 신부의 집에서 식을 올린다. 특히 그 집안의 사정에 따라 날(日) 수도 다르다. 인근에 수많은 깔리양 부족들은 결혼 밑천으로 신랑이 돼지를 가져와야 한다. 그러니 장성한 아들이 있으면 그 옛날 우리 시골 마을처럼 장가 밑천으로 돼지를 키울 것이다. 그것을 신부집으로 가지고 가며 예식도 신부 마을에서 올린다. 신부는 그 전날 마을에 있는 교회에 친구와 마을 소녀들과 함께 꽃과 풍선 등으로 무대를 소박하게 꾸민다. 다음 날 오전 8시쯤 목사의 주례로 한 시간여 식을 올리고 미니 트럭에 마을 사람들을 태우고 집으로 와 종일 마시고 논다.
그러나 몽족 결혼식은 조금 더 부유해 보인다. 인근 도시 치앙마이로 나가 결혼식을 올리고 다음 날 돼지를 잡아 일가친척들과 동네 사람들이 와 종일 논다. 오늘 식을 올리는 집은 마을의 행사를 주도적으로 나서서 하는 유난히 키가 작은 차일롱(52) 씨인데 1박 2일 동안 잔치를 한다.
6시에 행사를 시작한다고 하여 마을에 가니 정자에 찡쯩리, 카이, 솜차이, 쫌깽 등 마을 청년들이 앉아 있다. 바로 아래 결혼식을 한 집으로 가니 우물가에 10, 20대 청소년들이 모여 닭과 돼지를 손질하느라 부산하다. 돼지 2마리와 여러 마리 닭을 잡으며 술잔 하나를 돌리고 있다. 고기 다듬던 사람, 불가에 앉아 장작불을 때던 사람, 우물가에서 내장을 씻던 사람들 구분없이 받아 마신다.
오늘의 주인공 18세 신랑은 인근 1,300m 고지에 있는 빠이라는 작은 산간마을에 사는 청년이며, 이 집 딸인 신부는 올해 15살이며 10개월 된 아기가 있다. 신랑, 신부도 특별한 구분없이 바삐 손님들 시중을 든다. 얼큰하게 술들이 취하자 누군가 마을의 전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인근에 있는 '후아이 뽕 마을'에는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과 타이군이 싸우다 묻어둔 금이 있다고 사람들이 찾기를 원하다고 한다. 또한 삼거리 반대편 길을 따라 30여 분 따라가면 나오는 쿤 매나이 마을에는 이 산속에서 보기 힘든 절이 있었다고 한다.
자손들이 부엌 땅바닥에 엎드리더니 어른들에게 축원하는 큰 절을 세 번 올린다. 이어 한 사람씩 작은 잔으로 두 잔씩 술을 받고 마시며 많으면 한 잔을 주위 사람에게 권하는데, 새해에 보았던 것처럼 옆 사람에게 꼭 잔이 비어 있음을 확인시키고 나서 돌린다. 마을의 경사라 그런지 가장 나이가 많은 팔순의 할아버지가 흠뻑 술에 취하셨다. 그분의 지휘 아래 대바구니 안에 숟가락이 여러 개 꽂힌 커다란 밥그릇 한 개와 돼지고깃국이 놓여 있고 양쪽으로 낮은 나무의자가 두 개 있다. 신부의 아버지가 의자 한쪽에 앉더니 국에 밥을 말아 떠서 대바구니에 놓으며 뭐라고 중얼거린다. 이어 돼지고기를 찢어 놓으며 또 무슨 말인가를 반복하는데, 마치 앞에 있는 빈 의자에 조상님이라도 앉아 계시는 듯 정성이 지극하다.
벽에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낡은 사진이 붙어 있고 그 앞 조그만 단은 텅 비어 있다. 옆에 비슷한 높이로 붙어 있는 왕과 왕비의 사진 역시 오래되었다. 밥을 먹기 전에 기도를 하는데, 종교가 다른 옆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에 정신이 없다. 술을 아주 좋아하며 일당을 받고 몽족의 일을 자주 하는 깔리양족 사내도 여느 때처럼 벌써 취해 있다.
윤재훈(오지여행가)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경선 일정 완주한 이철우 경북도지사, '국가 지도자급' 존재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