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내가 몸담고 있는 모임의 선배 중 서울에 사는 한 분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식 걱정을 한가득 올려놓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들이 다음해가 되면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할 고등학교 2학년인데 갑자기 폭탄선언을 하더라는 것이다. 축구 4부리그 팀을 만들어 선수로 뛸 거라는데, 말하자면 사회인 축구단을 해보겠다는 말이었다. 일단 현재 같이 축구하는 친구들과 팀 창단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선배의 아들은 참가를 위해 전세버스 대절 방법을 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참가하겠다는 친구들 회비를 걷고, 공부 때문에 출전시키지 못하겠다는 친구의 어머니를 설득하고, 다른 지방에 있는 친구들과 문자로 의견을 나누다 수틀리면 서울로 모아서 회의를 하는 등 숫제 진짜 축구 구단을 하나 차릴 것 같은 기세로 바쁘게 돌아다녔다 한다. 시험이 내일모레인데도 축구 연습하고 축구리그 참가 작업에 전술회의까지 하는 걸 보니 아주 가관이더란다. "중학생 때 가수가 되겠다고 작사, 작곡에, 노래 부르고 춤 추고 연예기획사 오디션 본다고 설치던 건 차라리 귀여운 짓이었다"며 "내가 가만히 있어야 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었다.
이 글을 본 모임 사람들의 반응, 특히 자녀가 있는 기혼자 선배들의 반응은 하나같았다. "그런 아들 둔 선배가 부럽네요." 요즘 애들답지 않게 추진력과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고, 지금 모임을 만든 선배를 닮아서 조직을 만드는 능력도 탁월하니 커서 큰 인물 될 아이 같다며 "굳이 다그치지 않아도 되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 분위기를 한 번에 정리해 준 반응은 이 말이었다. "자식 자랑을 이렇게도 하시는군요."
축구단을 차릴 것처럼 맹렬하게 돌아다니던 그 선배의 아들은 올해 선배가 나온 같은 대학에 입학했다. 선배의 인내심과 믿음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 선배를 보면서 좋은 부모의 가장 큰 덕목은 '인내심'과 '믿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가 가는 길이 불안해 보이더라도 내 아이가 언젠가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과 인내심이 없이는 아이 키우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로봇이 아닌 이상 부모가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다. 나 또한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부모님이 제시하는 직업군들을 모두 거부하고 '기자'라는 직업을 택했으니까. 취업대란의 광풍 속에서 내가 그나마 밥 벌어먹고 살게 된 데는 무슨 짓을 해도 믿고 기다려 준 부모님의 기다림과 인내심과 믿음이 컸다.
"너도 커서 너 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봐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하지만 내 자식은 적어도 자기 바깥의 힘에 휘둘리고 흔들리는 아이는 아니길 바란다. 오히려 내게 대들더라도 줏대가 있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그런 아이가 이 험한 세상에 멋있게 살아남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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