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라/ 차표 파는 아가씨와 승강이하네….'
어릴 때 접했던 유머가 농후한 가요였다. 옛날, 서울이나 대구의 철도역에는 차표 파는 아가씨도 있었고 '빼~' 기적소리를 울리기도 하고 삼등차, 이등차 구분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요지경처럼 변했고 오늘날 기차는 땅 밑에서도, 땅 위에서도 신출귀몰하듯 거침없이 달린다.
내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먼저 접한 것은 지하철이었다. 지하철로 어디나 다 다닐 수 있는 가장 편리한 행보라고 먼저 한국에 착지한 형이 소개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형은 지하철 약도를 한 장 내게 건네주었다.
형이 끊어주는 교통카드를 지닌 그때부터 나는 지하철만 이용했다. 그러나 풍성한 잔칫상에 떡 하나 더 놓아야 제격이라 조금 아쉬운 점도 없진 않았다.
노약자, 장애인 좌석에 가끔 신사숙녀들이 겨끔내기로 엉덩이를 붙이고 노인들이 곁에 서 있어도 모르는 척하기도 하고 자는 척 눈을 감고 흔들거리고 있다.
몇 호선인지 모르겠다.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신 고객님은 매일 나무 두 그루를 심었습니다' 하는 홍보용 포스터를 본적이 있다. '지하철과 나무가 웬 연관이냐'고 고개를 갸웃했지만 자동차와 지하철의 배기량 차이점을 읽게 되자 저탄소 녹색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지하철의 의미를 다시금 새길 수가 있었다.
지구의 온난화를 늦추고 장마'홍수 방지, 친환경 촉구에는 식목의 의미가 가장 중요하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고객은 매일 두 그루 소나무를 심는 것과 같을 정도로 친환경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저탄소 녹색성장 홍보에 앞장서야 하는 대목에 중뿔나게 기독교 책을 든 선교사가 나타나서 "예수를 믿으십시오" 하고 전도하기도 하고, 칫솔 장사꾼이 오락가락하면서 "칫솔을 사십시오" 하는 등 막무가내로 들이밀어 쾌적한 공간의 분위기를 깨뜨리기도 한다.
화장실이 급할 때 가장 먼저 지하철역이 떠오른다. 일반 승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지하철역은 호텔에 못지않은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이 비치되어 있다.
대중들이 찾기 쉽게 알림판도 잘 표시되어 있다. 옥에 티라고 할까? 가끔 지하철역에서 담배가 금물인 줄로 알고 있는데, 화장실을 흡연 도피처로 생각하는 남자들이 가끔 눈에 띈다. 자욱한 연기가 독한 냄새와 함께 날려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촌닭이 관청 구경을 나선 듯 어디서 어디로 가야만 하는지 막연하기만 했다. 승객들이나 환승역의 가게 주인들한테 무작정 물어보기도 했다. 열 하고 물어보면 열 모두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갈 길이 급하면서도 자기 할 일에 바쁘면서도 따뜻함을 베푸는 그 한결같은 마음이 좋아서, 아니 당연하다는 듯 태도에 나는 체면을 무릅쓰고 물어보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정작 물어보고 나서 목적한 지하철역에 이르다 보면 '아, 여기에 안내표지가 있었구나' '괜히 바쁜 사람을 놓고 귀찮게 하지 않았나' 하는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도 가고 오고 붐비는 속에서도 용이하게 빠져나와 나한테 길을 묻는 나이 지긋한 아줌마나 아저씨들이 간혹 있다. "마포역으로 어떻게…." "신림역으로 어떻게…."
지하철역 구내에는 역무원들도 있고 서비스도 최고건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길을 묻는 분들이 있는 까닭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시골영감 기차놀이의 차표 파는 아가씨'가 인정 냄새 나고 그리운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류일복(중국동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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