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큰맘 먹고 교사 초년 시절 잠깐 근무했던 학교에 가 보았다. 떠나고 처음 가 본 학교는 서먹하게 변해 있었다. 앞 동 단층 건물은 온데간데없고 뒷동은 원래 2층이었는데 3층으로 증축되어 고즈넉이 서 있었다. 나는 아스라한 기억을 더듬어 사진 몇 장을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반 담임을 맡았던 그해에는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었다. 3박 4일 중, 첫날은 강릉에서 묵도록 일정이 잡혀 있었다. 우리는 빠듯한 첫날 일정을 소화하고 늦은 저녁 무렵에야 경포대 근처의 여관에 들었다. 당시에는 연탄가스 사고가 교통사고보다 훨씬 많던 시절이었다. 저녁을 먹고 우리 반 아이들이 묵을 방을 둘러보는데, 실장 포함 여덟 명이 묵을 방으로 들어서니 연탄가스가 코에 느껴졌다. 나는 주인아주머니를 불러 그 사실을 알리고 조치해 줄 것을 요구하니 주인아주머니는 어제도 그저께도 수학여행단이 묵고 갔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다면서 오히려 내가 과민반응을 보인다고 퉁바리를 놓았다. 그래도 미심쩍어 나는 환기창은 열어놓고 자도록 잡도리하고 다른 방으로 향했다.
저녁 9시까지로 계획된 캠프파이어는 두 차례나 연장한 11시가 되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정이 넘어서야 간신히 아이들을 각자의 방으로 돌려보내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결에 나는 무엇인가 땅바닥에 쿵, 하고 부딪치는 소리를 환청처럼 들었다. 직감적으로 연탄가스가 떠올라 화들짝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이 터지고 말았다. 문제의 방으로 가 보니 한 아이가 방에서 튕겨 나와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 아이들을 흔들어 깨우니 모두 물먹은 솜뭉치였다. 나의 고함에 남학생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한 사람씩 둘러업고 본부 방에 눕혀 놓으니 모두 인사불성이었다. 그제야 주인아주머니가 부들부들 떨며 식초병과 김치통을 들고 달려왔다. 연탄가스에 식초와 김칫국물이 그렇게 좋은 줄 그때 처음 알았다. 새벽 3시가 되어 어찌할 방법이 없어 에멜무지로 그걸 코에 드리우고 먹였는데,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번 세월호의 참사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불현듯 그 일이 떠올라 만감이 교차했다. 만일 그때 무슨 일이 있었으면 오늘의 내가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당시 유행하던 노래 중에 '눈이 큰 아이'가 있었다. '내 마음에 슬픔 어린 추억 있었지. 청바지를 즐겨 입던 눈이 큰 아이'로 시작되는 그 노래가 강릉에서 설악으로 가는 버스 속에서 흘러나왔을 때, 간밤에 언제 그랬느냐는 표정으로 모두 밝게 손뼉치며 나직이 합창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합창 중에 누군가가 가만히 속삭였다. "우리 하마터면 이 노래를 영영 못 부를 뻔했어." 그랬다. 나는 하마터면 걔네들을 영영 못 볼 뻔했으니 말이다.
이번 달부터 수학여행이 재개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재개의 전제 조건으로 3, 4학급 단위의 소규모 실시 권장과 수학여행 계약 체결 시 업체의 안전요원 배치, 전세 버스 안전 정보의 학교 제공, 선박'항공 등의 경우 출발 전 사업자의 안전교육 시행 의무화 등을 제시했다. 대부분의 학교들은 교육부의 재개 방침으로 2학기에 수학여행을 재추진하리라 예상된다.
문제는 안전이다. 교육부 방침대로 안전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런 다행이 없겠지만, 과거의 예로 보아 완전한 믿음을 주지 못한다. 안전의 기본은 관심과 점검이다.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집요하게 들여다보면 눈이 점점 커져 마침내 '눈이 큰 아이'가 된다. 우리 세대가 어렸을 때 약비나게 들었던 '꺼진 불도 다시 보는 일'만이 안전을 보장받는 확실한 길이다.
이연주/소설가·정화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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