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한국 미술, 실험정신은 21세기

입력 2014-07-11 07:35:16

봉산문화관 비디오아티스트 1978전

김영진
김영진
박현기
박현기
이강소
이강소
최병소
최병소

비디오아트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1970년대 대구현대미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작가들이 제작한 실험적인 비디오영상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다음 달 10일까지 봉산문화회관 4전실에서 열린다.

봉산문화회관이 개관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기억공작소-비디오아티스트 1978전'에서는 1978년 김영진, 박현기, 이강소, 최병소 등의 미술가들이 사진작가 권중인 소유의 대구 동성로 K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비디오영상 3편과 이강소의 작업실에서 촬영했던 비디오영상 1편, 이번 전시를 앞두고 김영진, 이강소, 이현재, 최병소 작가를 인터뷰한 영상과 사진 자료 등이 소개된다. 이번에 전시되는 1978년의 실험적인 비디오영상들은 1969년 김구림이 16㎜ 필름으로 엮은 한국 최초의 실험영화 '1/24초의 의미'에 이어 비디오로 촬영한 한국 최초의 비디오아트로 평가 받고 있다.

4편의 비디오영상에는 당시 동시대 미술가로서의 실험적인 시도들이 담겨 있다. 비디오영상에 등장하는 김영진, 박현기, 이강소, 최병소 작가는 1978년 9월 23~30일 대구시민회관 전시실에서 개최된 제4회 대구현대미술제 '비디오&필름전'에 작품을 출품했으며 1974년부터 1979년까지 대구현대미술제에 모두 참여했던 미술가 8인에도 속한다. 이들은 당시 미술계의 대형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집단적인 미술실험의 주요 구성원이었으며 이들이 행했던 비디오아트는 당시 미술가들의 실험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김영진의 비디오영상 'Drawing'은 투명한 유리 표면에 자신의 몸 일부분을 밀착시킨 뒤 유리와 몸이 맞닿는 부분에 생긴 압착 자국을 따라 유성펜으로 드로잉을 하는 행위를 촬영한 것이다. 손, 발바닥, 등, 배, 어깨, 가슴, 얼굴 등의 신체 부위를 대상으로 한 행위와 그 흔적을 비디오의 시간성에 결속시킨 이 작업은 이후 신체를 활용한 작가의 퍼포먼스 작업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박현기의 비디오영상은 사진인화용기에 담긴 물에 투영된 조명기구의 이미지와 물 표면을 촬영한 것으로 손으로 물을 휘저은 뒤 물결에 의해 그림자 형체가 일그러졌다 다시 복원되는 과정을 통해 실체와 허상의 관계에 질문을 던진 작품이다. 이 비디오영상을 계기로 박현기는 다양한 주제의 비디오아트를 잇따라 제작하면서 국내 비디오아트의 선각자로 자리 잡았다.

이강소의 비디오영상 'Painting'은 작가가 유리에 물감을 칠하는 행위를 담고 있다. 붉은색, 파란색, 검은색 등 다양한 물감이 유리에 칠해질 수록 작가의 모습은 물감에 가려 비디오영상에서 점점 사라진다. 이는 당시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TV라는 대중매체의 확산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반영한다. 작가는 비디오영상을 통해 TV로 대변되는 대중매체가 사실을 가리거나 왜곡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향후 이 영상은 행위 자체의 의미를 중시하는 이강소 작업의 밑거름이 됐다.

최병소의 비디오영상 'Drawing'은 작가가 흰색 분필로 칠판에 수없이 많은 선을 그어 칠판을 하얗게 덮는 행위를 보여준다. 선을 긋는 작가의 움직임이 지루하게 연속되는 이 영상에서 우리는 그의 회화 작업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심 미술 개념을 확인할 수 있다. 최병소는 연필을 이용해 신문지를 까맣게 칠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는 그리는 것이 곧 지우는 행위로 해석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정종구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는 "1978년 당시 제작된 비디오영상은 작가들이 일상을 둘러싼 문제의식들을 공감하고 몸으로 소통하려는 실험적 태도에서 비롯됐다. 이번 전시는 1978년 당시 미술에서 이루어졌던 집단적인 실험 에너지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검증하고 이들 예술가의 남다른 태도를 우리의 자산으로 기억하기 위해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작가와 관객이 함께하는 워크숍이 12일 오후 3시 4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날 워크숍은 비디오영상에 대한 프레젠테이션과 작가의 설명, 관객과의 토론 등으로 꾸며진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선착순 20~30명 모집. 053)661-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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