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가 나자 교육부는 수학여행을 잠정 중단하기로 하였다. 사고 원인을 추적해 나가는 중에 해경의 비리가 드러나자 청와대는 해경의 해체를 결정한다. 일련의 과정에서 총리의 자진 사표도 있었다. 그러나 후임 총리의 인선에 난항을 겪게 되자, 대통령은 마침내 새로운 총리 임명을 포기하고, 물러나겠다고 한 총리를 유임시키기로 한다.
아마도 소설가 박완서가 보았더라면, "아씨가 그만 일로 폐농을 허실라치면, 빈대 죽는 거 고습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것과 진배없는 멍텅구리 짓이구먼요."라고 했을 법한 지경이다. (소설 '미망' 중에서)
이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입시과열이 문제가 되면 명문고와 명문대를 없애자는 주장이 나오고, 최근 진보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자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물론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들은 얼핏 설득력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암의 원발 병변을 급하게 수술로 제거하면, 이미 전이가 되어 집 떠난 암세포들은 돌아갈 집이 없어지기 때문에 다른 장기에 더 급속하게 자리 잡으려고 해서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전이암은 눈에 보이는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환자의 전체적인 면역 상태나 건강의 정도를 고려한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선덕여왕은 삼국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전쟁이 빈번한 시기에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왕위에 즉위한다. 그는 명장인 김유신과 외교술의 천재 김춘추를 중용하는 탁월한 용인술로 이를 극복해 나간다. 김유신은 진골이라고는 하나 가야의 후손이라는 치명적 약점을 지닌 자였고, 게다가 김춘추는 왕좌를 두고 선덕여왕과 경쟁했던 김용춘의 아들이 아닌가.
기득권을 빼앗길 것을 염려한 귀족들의 만만치 않았을 반대를 무릅쓰고 김유신을 기용한 것이나, 정적이 될 수도 있었을 김춘추를 정치 파트너로 등용한 것은 가히 높이 살 만하다. 과감하고 포용적인 신진 인사 등용을 통해 불안했던 왕권을 안정시킬 수 있었고, 결국 삼국통일의 토대를 만들 수 있었다.
총리가 이미 사표를 내고 후임자 선정 과정까지 나아갔지만, 어려운 청문회 과정을 피해 나가려고 현재의 총리를 유임시키려는 생각은 문제의 본질을 잊은 처사이다. 정견이 다르다고 등용하지 못하고, 능력과 청렴도까지 겸비하여도 개인적인 정치 발전의 토대로 이용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기용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르다 보니 인물이 없는 게 당연하리라.
정치는 사회생활에서의 필연적인 대립'분쟁을 조정해 나가는 과정이다. 또한, 민주주의의 덕목인 관용은 타인을 이해하고 용서하라는 식의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차이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줄여, 갈등 에너지를 긍정적인 사회 변화의 힘으로 변환시키자는 것이다. 상대방을 복종 통제하며 자기 의지에 부합하는 질서만을 유지'강화하는 것은 정권 장악이라는 목표에는 충실할지도 모르나, 그러한 정치문화 속에서는 국민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예로부터 현명한 권력자는 정권의 장악이나 국가의 창업 후에는 개국공신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숙청의 과정을 거친다. 정권 장악에 필요한 맹목적인 충성심과 복종심이 국가의 안정화와 화합에는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운용상의 폐단이 많이 드러나고 있지만, 그 순기능도 무시할 수가 없다. 대통령제 국가의 고위 공무원 임명 절차에서 인사청문회제도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는 것이다. 청문회제도를 없애자는 주장을 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럽다고나 해야 할까.
남송(南宋)의 육유(陸游)는 '인재는 남북(南北)을 겸하고 의논(議論)은 피차(彼此)를 잊어야 한다'고 하였다. 인재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그 찾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사표 수리를 기정사실화해 놓고 청문 과정의 어려움을 피하고자 물러나겠다는 사람을 유임하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와 무엇과 다를 것인가.
이석화/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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