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칼럼] 말 바꾸기보다는 솔직한 이해 구하기

입력 2014-07-07 11:04:50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이다. 인생은 언제나 아래위, 앞뒤가 뒤바뀔 수 있는 것이다. 누구는 항상 갑이 되고, 누구는 죽어도 을만 하는 세상이란 없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여당은 야당이 될 수 있고 야당도 언젠가는 여당이 될 수 있다. 세습 여당이나 만년 야당이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단순한 진리를 깜빡 잊어버린다. 처지가 바뀔 수 있음을 생각지 못한다. 그러니 인생 역전이 되면 과거가 발목을 잡는다.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말을 바꿔보지만 녹록지 않다. 세상은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잘 기억하고 있다.

정치 시계를 과거로 되돌려 보자.

2004년 탄핵 역풍으로 사경(死境)을 헤매던 한나라당은 '수호천사 박근혜'를 대표로 세워 총선에서 구사일생으로 되살아났다. 탄핵은 면했지만 인기가 없던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한나라당의 총공세는 이어졌다. 2005년 한나라당은 2000년 도입된 인사청문회법을 더 강화해 청문 대상을 국무위원으로까지 확대했다. 벌써 두 명의 총리 후보(장상, 장대환)를 낙마시킨 노하우도 갖고 있던 터였다. 이 흐름을 주도한 것은 제1 야당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였다. 털끝에 묻은 티끌 하나까지도 물고 늘어지겠다는 자세였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 힘 빼기에 더욱 열심이었다.

2006년 1월 개각에 대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혹시나 하던 것이 역시나 정도를 넘어서 '이럴 수가'였습니다. 완전히 한마디로 국민을 싹 무시한 개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고 했다. 인사 책임자인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대대적인 인사청문 공세를 예고하는 발언이었다. 당시에도 살아남을 인물이 없다는 지적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2012년 대통령선거 결과는 전사(戰士)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니나다를까. 2013년 2월 자신의 첫 인사에 대해 논란이 일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청문회가 개인의 인격을 과도하게 상처 내지 않고 실질적인 능력과 소신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고 했다. 야당 대표 시절과는 180도 달라진 자세였다. 지난달 말 '도로 정홍원 총리'라는 기상천외한 인사를 한 뒤 박근혜 대통령은 "높아진 검증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분을 찾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습니다. 현행 인사 청문회 제도에 개선할 점은 없는지 짚어보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해 주셨으면 합니다"는 말도 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것이 인지상정이라지만 약속과 원칙의 정치인이라는 대통령도 별수가 없었다. 대통령이 한 이야기들을 기억하는 국민들 눈에는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었다. 말을 바꾼다고 믿어줄 국민은 없다. 군색한 말 바꾸기보다는 차라리 솔직한 사과가 더 믿음을 주는 법이다.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이 되어 돌이켜보니 야당 시절 너무 지나쳤던 것 같다. 잘못한 일도 많았다." 이런 말 한마디면 족하다. 대통령의 눈물이 지방선거의 판세를 뒤집어 놓지 않았는가? 국민들은 눈물방울에서 대통령의 진심을 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더라도 일방 낭독이면 곤란하다. 국무회의나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라면 낙제급 감점이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세월호 사태 때에 이미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야당의 협조를 구하는 일인 만큼 야당 대표들과의 만남에서라면 보기 좋을 것 같다. 과거지사에 대한 유감 표명과 동시에 미래에 대한 협조 요청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침 며칠 안에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의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함께 밥을 먹는 자리를 마련한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라면 바람직하다.

오늘부터 4일간 8명의 장관급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특정 인사에 대해서는 여론도 나쁘다. 그중 몇몇 후보자는 낙마할지도 모른다. 낙마가 현실이 된다면 누구 탓도 해서는 안 된다. 낙마의 책임은 부적격자를 지명한 박근혜 대통령과 자기 관리를 잘못한 당사자의 것이지 이를 비판하는 야당이나 국민의 탓은 아니기 때문이다. 제도 탓은 더더욱 아니다.

물론 인사청문회 내용과 결과를 무시하고 임명을 강행할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이 취임 후 최저를 기록하고 있는 지지율의 반전 기회를 발로 차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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