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으로] 청년 속으로

입력 2014-07-05 08:00:00

장강명의 소설 '표백'에는 이상한 청년들이 등장한다. 이상도 꿈도 없는 대학생, 희망을 잃은 20대, 변화나 혁명이란 말이 낯선 청년들이 소설 속을 배회한다. 소설 속 청년들에게 세상은 그저 주어진 것일 뿐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상이다. 작가는 이들이 바로 우리 시대 청년들의 현재이자 본질이며 표상이라며 후기를 쓰고 있다. 이념과 저항성을 상실한 채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서 결코 의심하지 않는 청년, 자신의 정체성마저 자본에 '표백'된 그들이 우리 시대의 청년이라고 말한다. 말 그대로 꿈꾸지 않는 텅 빈 청년들의 실체를 날것 그대로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에서 청년들은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나와 있는'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표백세대인 그들 스스로에게 이런 세상에 순응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자살할 것인가 질문한다. 결국 각자의 위치에서 가장 성공한 어느 날, 그들은 와이두유리브(why do you live'소설에 등장하는 사이트명)란 질문을 남기고 자살한다. 이 도발적이며 고발적인 상황은 물론 소설 속 상상이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질문은 우리들에게 아픈 칼끝처럼 다가온다. 소설이 그냥 소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청년들 다수는 자신의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가정환경과 재력, 학력이나 지역이 자신의 미래를 이미 결정했다고 믿는다. 특히 지역 청년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들은 주어진 틀 속에 자신을 구겨 넣는다. 그곳에서 당장의 일자리와 몇 장의 지폐를 위해 자신의 욕망은 버려둔 채 살아간다. 어느새 대의와 야망, 위대한 꿈 대신 단 하나의 기준(돈)을 좇는 저급한 경쟁의 한가운데로 청춘은 내몰린다. 그러므로 소설 속 청년들의 죽음도 결국 '완전한 돈의 세상'에 대한 저항 혹은 야유였던 셈이다.

대구의 청년 부재 상황이 심각하다고 한다. 역으로 청년들도 대구에서 결핍을 느낀다고 한다. 그들은 가급적 대구와 함께 미래를 설계하지 않는다. 과연 대구 청년들이 대구에서 느끼는 결핍은 무엇일까. 좀 거창하게 말하면 이런 것이 아닐까. 언젠가 나온 책 '신세대:네 멋대로 해라'(현실문화연구'1993)의 제목처럼 직언이 일상 속에 없는 것이며, 정치사회적 지평 속에 청년의 욕망이 발견되지 않거나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 전체와 맞먹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거세하는 대구라는 전체주의가 엄혹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며, 공공의 가치와 정의적 실천을 부담스러워 하는 대구의 모습을 보고 산다는 것이다. 더 보탠다면, 기성의 위계와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지지고 볶고 까불고 실패하는' 욕망이 일상 속에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구가 재미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도시는 무엇인가. 그토록 이야기하는 도시 경쟁력은 어떤 것인가. 혹시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이 일방적으로 야합하는 도시 계획 과정에 한몫 챙기는 것을 경쟁력이라 생각하는가. 우리 도시의 위상을 특정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결정되고 이를 토건 자본이 장악하는 이상한 경쟁력을 도시 발전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익명의 사람들끼리 서로 조율하고 상호 이해의 틀을 만들며, 개인이 전체를 위해 죽지 않는 사회는 어떤가. 정치와 자본에 앞서 주민 스스로 도시의 개인적 가치를 긍정하면서 동시에 골목마다 공공성이 익어가는 도시는 어떤가. 청년의 상상과 실험이 가능한 도시는 또 어떤가. 분권적이면서 지속가능한 도시, 건강한 문화생태계를 기반으로 청년의 상상력이 실험되는 도시, 청년의 동력으로 도시 스스로 창의적이며 유기적인 도시는 어떤가.

청년은 도시의 존재 방식을 바꾸는 힘이며 일상의 형질을 변화시키는 혁신의 동력이다. 새로운 시장이 내건 대구 혁신은 청년 혁신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구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청년들 스스로 자립적 지평 위에서 대구 청년의 삶을 설계해 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부터 만나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대구의 속 깊은 이야기와 미래를 함께 나누어야 한다.

소설 '표백'은 진정한 청년들의 귀환을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대구로 돌아오는 청년들의 귀환, 그것이 대구의 전환 혹은 혁신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박승희/영남대학교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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