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참여마당] 우리가족 이야기-지난여름 어머니 집에서 보낸 휴가

입력 2014-07-03 14:36:36

비가 밤새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 어느새 생기를 잃어가던 나무들이 푸른 잎을 틔우기 시작했다. 여름이 되면서 어느새 농촌의 현실은 점점 바빠지고 있다. 귀농 운동과 농촌의 현실에 대한 많은 인식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농촌의 현실은 어렵기만 하다. 척박한 토지와 힘든 일손을 사람 손 하나 빌리지 않고 열심히 줄곧 줄달음치듯 평생을 땅과 사이좋은 친구로 벗하며 유유자적 늙어오신 고운 눈매의 어머니를 보면 가슴 한구석에 사랑과 연민 그리고 고향 언덕 같은 애잔함이 너울진다.

어머님이 늘 강조하시는 철학이 "농사를 지을 때는 내 것처럼 생각하고 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땅에 욕심이나 사심이 들어가서는 절대로 사람이 먹을 식물이 제 구실을 못하는 법이지" 하시면서 언제나 사심과 욕심 없이 계산적이지 않은 성실함과 묵묵함으로 땅에 투자하고 그 투자를 아름답게 거두며 열심히 구슬땀을 흘려내신 어머니~.

어린 시절부터 5남매의 교육과 건강을 책임질 수 있었던 자산도 땅이 준 것이라 믿는 어머님은 늘 돈을 위해 농사를 지은 것이 아니라 열심히 땅에서 성실하게 양심껏 일했을 때 얻어진 고마운 선물이라는 것을 강조하셨다.

남들과 다른 어머니의 농사 철학 중의 하나는 순수한 유기농을 고집하는 것이었다. 혼자서 어렵게 농사지으며 자식 교육과 뒷바라지에 힘드시면 쉽게 수익을 낼 수 있는 잔꾀도 부릴법한 데 어머닌 그야말로 자식이 보기에 너무 미련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들게 그 넓은 농토를 농약 한 번 주지 않은 유기농으로 길러내어 오롯이 자식처럼 키워오셨다.

수확량이 약간 떨어지거나 아님 벌레 먹은 배춧잎으로 보기 좋지 않아도 늘 어머니의 농사철학에 믿음을 주고 꾸준히 사주는 분들이 계시기에 어머닌 더욱 열심히 성실하게 땅을 지켜올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올라 잠시 추억에 젖어본다. 어린 시절 사람들이 늘 끊이지 않는 우리 집이었다. 후덕한 어머니의 인심과 정은 늘 지나는 사람을 객이 아닌 주인으로 맞이하셨다. 그래서 어머니의 밥상을 몇십 년이 지난 후에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작은 우물을 사이에 둔 작은 텃밭엔 늘 어머니의 투박한 손길과 호미질이 스치고 간 자리에 빼곡히 들어찬 상추며 가지 오이 쑥갓 온갖 채소들이 식물관처럼 즐비했다.

어머닌 손님이 오면 언제나 내 집의 가족을 챙기든 정성을 들여서 식탁을 차리셨다.

한 솥 가득 가마솥에 보리밥을 지으시곤 얼른 옥색 치마섭을 날리며 텃밭으로 가서 치마폭 가득 상추와 가지, 호박 등을 한 아름 따오셨다.

모락모락 뜨거운 김이 오르고 어느새 밥상 위에 밥이 그 흔한 찰기를 드러내며 입맛을 유혹하고 있을 때 어머닌 어느새 투박한 손으로 고슬한 보리밥을 큰 그릇에 옮겨 담으시고 상추와 향기 그윽한 쑥갓 가지 그리고 호박나물을 얹고 열무김치 한 숟갈과 고추장을 듬뿍 얹어 먹음직스런 비빔밥을 한 상 가득 차려내시고 텃밭에서 따온 풋고추도 내어서 푸짐한 밥상을 차렸다.

그런 어머니의 선한 인심과 후덕한 정 그리고 성실함이 만나 지금까지 어머닌 땅을 친구로 벗 삼아 살아오셨다. 어머니 연세가 올해로 72세이다. 그런 어머니는 여전히 그 넓은 텃밭을 인부하나 부리지 않고 손수 휜 허리로 밭이랑을 타고 다니며 호미와 괭이질을 하면서 사이사이 곡식도 뿌리며 살뜰하게 가꿔오셨다.

작년 여름 휴가차 어머니댁에 들렀을 때에도 집이 푸른 텃밭과 사람키 보다 더 큰 키를 자랑하는 옥수수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을 만큼 넓고 푸르게 가꿔오신 뜰이 있었다. 농촌은 언제나 향수 어린 행복과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달콤한 그리움을 갖게 했다. 언제나 가끔 어머니가 계신 고향을 방문하지만 갈 때마다 아름다운 추억 한 편과 그리움을 묻고 올라올 수 있는 것은 어머니가 푸르게 가꿔오신 뜰과 푸른 농촌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사위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시며 희생하시는 어머니 모습은 참으로 넓은 농촌의 토지와 뜰과 닮아있어 콧잔등이 아려온다.

시리도록 그리운 고향마을과 그 정겨운 터를 그리워함도 어머니의 숨결과 땀과 눈물이 서려 있기 때문이리라. 땀과 눈물 그리고 성실과 인내로 그 인내의 시간을 달려오며 지금까지 견뎌올 수 있게 된 것도 땅이 우리에게 준 고마움 그것이었다.

비록 듬성듬성 벌레 먹은 흔적들이 여기저기 있는 모양새는 그리 좋지 않은 배춧잎이지만 그 안의 맛과 달콤한 향기 그리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무농약이 주는 믿음과 신뢰 그것이 어머니의 농사를 이만큼 지켜올 수 있는 원동력이라 난 믿고 있다. 여름휴가 때 시골을 방문했을 때의 어머니 허리는 키보다 낮게 휘어 있었다. 넓고 황량한 벌판을 푸른 들판으로 가꾸어 놓기까지 밤잠을 설쳐가며 아이를 돌보듯 밭에 투자하신 어머니의 땀과 수고가 배어 있는 뜰을 보며 행복감과 시린 가슴이 교차했다.

어머닌 시골텃밭에서 직접 따온 채소를 가지고 매운탕을 끓여주셨다. 양은 솥에 갓 잡아올린 민물고기와 함께 고추장을 풀고 그 안에 텃밭에서 캐온 깻잎과 미나리, 호박, 갖은 야채를 넣고 밀가루 반죽을 뜯어 넣어서 한 솥 가득 끊여내었다.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 그리고 천연 유기농으로 만들어진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음식 매운탕을 먹으며 고향에 대한 사랑과 농촌에서 태어난 나 자신이 한없이 행복하고 귀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설렘으로 다가왔다.

"엄마 이제 힘들 텐데 농사지을 때 사람 좀 쓰지 그래?" 내가 묻자 어머닌 여전히 손 사례를 치신다.

휴가 때 우린 그저 물놀이나 하며 시원한 계절을 만끽하고 있는데 어머닌 넓은 밀짚모자에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땀을 흘리며 밭을 가꾸고 계셨다.

어머니 키보다 몇 배는 커버린 옥수수며 어머니 손길의 사랑을 담아 잘 자라는 넝쿨 오이 그리고 황폐한 땅이 생생한 물기를 머금고 아름다운 식물들을 키워내기까지 어머니는 얼마나 종종걸음을 치시며 새벽 밭을 누비셨을까? 어머니의 손은 여름 햇볕에 까맣게 타버렸고 어머니의 이마에 패인 주름 사이로 더 깊은 태양의 흔적이 드리워졌다. 단내나는 시원한 막걸리 한 잔에 여름 더위를 잠재우며 어머니가 키워온 정성과 애정 그리고 농사는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값있고 귀한 보석 같은 일상이라 생각했다.

단순히 수익과 생산성을 창출해 내기 위한 얄팍한 상술에 유혹당하지 않고 적은 수익을 큰 기쁨으로 생각하며 세상에서 제일 큰 믿음으로 자란 농사를 짓고 있는 일흔 둘의 노모의 땀이 밴 옷자락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 보였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의 아름다운 농사로 인해 난 고향에 대한 더 애틋한 애정과 정을 느끼며 세상을 향해 가는 길에 성실하고 아름다운 마음 하나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지혜와 용기를 얻는다.

그런 우직한 믿음과 성실 그것은 어머니의 일상에서 보여준 가장 아름다운 철학이었다.

지금쯤 어머니가 가꿔온 텃밭엔 푸르게 넘실거리는 자연이 더 푸르게 채워져 있겠지. 어머니가 키워낸 텃밭에서 뜯어온 유기농 채소로 시원한 식탁을 차려보고 싶다. 어머니의 사랑과 온정을 입에서 가슴으로 느끼고 싶다.

김정옥(대구 달성군 다사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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