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대안적 삶 성찰 코미디, 유럽판 '포레스트 검프'

입력 2014-07-03 08:00:00

유쾌하게 늙어가는 사람들 낙관적 미래 기대케 하는 힘

지금 극장가에는 블록버스터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 이는 관객이 극장을 방문할 때, 선택의 종류가 다양하지 못하다는 것이며, 획일적인 선택과 취향을 보이지 않게 강요당하는 상황에 놓이게 한다. 엄청난 물량공세로 시장을 장악하며 더욱더 큰 수익을 창출하는 블록버스터에 맞서 '다양성 영화'는 콘텐츠로 승부를 겨룰 수밖에 없다. 지난주 흥행 순위를 살펴보면 곧 있을 방학 성수기 블록버스터 대전의 전초전 시기에 선전한 '다양성 영화' 한 편이 눈에 띈다.

할리우드 영화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와 '엣지 오브 투모로우', 칸영화제에서도 성과를 올린 한국 액션영화 '끝까지 간다', 프랑스의 판타지 블록버스터 '미녀와 야수'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플렉스 할그렌)이 돌출적으로 보인다.

앞의 영화들이 액션, 판타지 일색인 데 비해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휴먼 코미디이며, 게다가 스웨덴 영화다. 스웨덴 영화하면 낯설게 느껴지지만, 최근 비평적으로 호평을 받고 국내 흥행에서도 성공한 '렛 미 인', '밀레니엄 시리즈' 등이 있다. 스웨덴은 예전 무성영화 시절부터 엄청난 영화강국이다. 세계영화사적으로도 명장으로 추앙받는 잉그마르 베르히만, 라세 할스트롬, 보 비더버그 등을 배출한 나라다. 적은 개봉관 수에도 불구하고 지난주 흥행순위 5위를 기록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 스웨덴 영화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는 전 유럽을 강타한 베스트셀러인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2010년 스웨덴 베스트셀러상, 2011년 독일 M-피오니어상, 덴마크 오디오북상 등 온갖 화려한 수상 이력을 자랑한다. 이럴진대 소설의 영화화가 성공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왔던 한국 코미디나 할리우드 코미디와는 결을 달리한다. 빵빵 터지는 웃음보다는 대안적 삶에 대한 깊숙한 성찰을 가능케 하는 지적인 코미디다.

국내 '꽃할배' 신드롬에 발맞추어, 영화는 귀여운 좌충우돌의 '100세 할배'를 경탄하게 한다. 또한 건강하고 유쾌하게 늙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미래를 낙관적으로 기대하게 하는 힘을 보여준다.

알란은 100세 생일을 맞아 요양원을 탈출한다. 아무 기차나 잡아타고 낯선 곳에 내린 그는 우연히 폭주족의 돈 가방을 맡아주다가 갱단의 추격을 받게 된다. 대책 없이 낙관적인 무정부주의자 알란은 잔인한 갱단의 추적을 유유히 따돌린다. 중간 중간 자신의 지난 삶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알고 보니 그가 엄청난 폭파 전문가임을 알게 된다.

알란은 1차 세계대전 시기부터 지난 100년간 프랑코, 스탈린, 아인슈타인, 트루먼의 멘토로 20세기 역사를 들었다 놨다 한 숨겨진 능력자다. 영화는 실제 역사의 고비에 폭파 전문가인 알란을 가져다 놓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스페인 내전, 2차 세계대전 시기 핵무기 개발의 맨해튼 프로젝트, 미소 냉전, 그리고 1980년대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협상과 베를린 장벽 붕괴 등 역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알란이 등장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영화는 '포레스트 검프'처럼 순수하지만 약간은 아둔한 무명인이 역사의 현장에 참여하며 흐름을 바꾸어버리는 우연한 순간에서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그리하여 평범한 우리 누구나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 참여하고 있다는 인민주의 철학을 녹여낸다. 어처구니없이 속속 벌어지는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서 세계의 주인은 한 줌의 리더가 아니라 대중임을 호쾌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할 것이다. 하지만 굳이 역사에 대한 관심이 아니더라도 영화에는 즐길거리가 충분하다. 알란 할배는 별다른 특별한 계획이 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는 고아이며 무학에다 가난하고 외로웠다. 그러나 그가 유희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요인은, 그가 매순간 주어진 행운을 누리는 낙관주의자이며, 어디에도 정박하지 않는 유목민적인 자유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유희적 삶이 계획된 치열한 삶보다 훨씬 풍부해졌다. 알란은 '지금 당신이 느끼는 설렘은 행운'이며 이를 마음껏 즐길 것을 주문한다. 100세를 살아온 노인이 우리에게 주는 삶의 지혜다. 카르페 디엠, 그대의 삶을 즐길 것, 그리고 사랑할 것!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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