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책] 고향유정

입력 2014-07-02 08:00:00

막걸리 심부름이야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홀짝홀짝 마시는 스릴이 있었고, 담배 심부름은 잔돈으로 과자 사 먹는 재미라도 있었지만, 찬물을 길어오는 일은 참 재미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우물이 깊은 집은 우리 집에서 한참이나 멀었다. 누런 주전자를 들고 검정 고무신으로 털레털레 고샅길을 걷노라면 이글거리는 뙤약볕은 내 머리 위로 송두리째 내려앉았다. 단내가 후끈거렸다. 이마에 흐르는 이슬 같은 땀방울이 주전자에도 송골송골 맺혔다.

지금쯤 고향 들판에는 모가 파랗게 심어져 있겠지만, 여전히 마늘 향기는 가시지를 않고 있겠다. 한지형 저장 마늘의 본고장인 고향 마을은 모심기가 끝난 한참 후까지도 마늘 향이 온 동네를 감싼다. 건조 창고에 걸린 마늘이 여전히 향을 내뿜기 때문이다. 마늘을 캐고 모를 심는 연중 최대의 농번기가 끝나면 보통 장마기로 접어든다. 장맛비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일손은 멈추지 않는다. 장에 내다 팔 마늘을 선별해 굵기별로 보기 좋게 묶는다.

얼마 전 고향에 집터를 하나 장만했다. 정미소를 뜯은 자리가 매물로 나왔다고 해서 땅값에 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달라는 대로 주고 바로 계약을 해 버렸다. 수구초심 때문이었으리라. 중학교 때 떠나온 고향이다. 정미소가 있던 자리는 마을에서도 중심적인 위치에 있기도 했지만, 어린 날 추억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곳에 집을 지으면 그 옛날 어린 시절처럼 형제들이 마당 살평상에 빙 둘러앉을 수 있을까.

마늘이 나는 곳이라 마늘을 이용한 반찬이 많았다. 마늘장아찌는 물론이고 생마늘도 즐겨 먹었다. 아이들 도시락 반찬도 고추장에 생마늘만 싸줄 정도였다. 더운 여름날 우물에서 길러온 샘물에 식은 보리밥 한 덩이 말아, 고추장에 박아둔 풋마늘이나 가죽(참죽)순을 곁들이면 임금님 수라상도 부럽지 않았다. 날된장에 찍어 먹는 풋고추와 잔 파를 곁들인 상추쌈도 입맛을 돋웠다. 모두 소박했지만 결코 모자람이 없는 성찬(盛饌)들이었다.

요즘은 고향에 사둔 집터에 어떤 집을 지을까? 상상하는 재미로 산다. 그 재미가 참으로 쏠쏠하다. 하룻밤에도 기와집을 몇 채나 지었다 부순다고 하더니만 요즘 내가 그렇다. 한옥으로 지을까 양옥으로 지을까, 조형미는 최대한 살려야겠지? 넓은 마당에는 그림처럼 잔디를 깔 거야. 그러나….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 하리'라는 소설의 제목처럼, 귀향은 꿈으로 끝날지도 모를 일이다. 설령 돌아간다 한들 이미 '그 시절의 고향'은 아니지 않겠는가.

장삼철/삼건물류 대표 jsc10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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