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대상이 허상임을 알 때 그것을 향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신의 시선 속에 타인을 억압하는 욕망의 시선이 깃들어 있음을 깨달을 때 좀 더 쉽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욕망이론이 지닌 미덕이다. (쟈크 라캉의 '욕망 이론' 중에서)
욕망이란 단어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는 무엇인가를 욕망하며 살아갑니다. 어쩌면 그 욕망이란 것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권력, 명예, 자본을 욕망하기도 하고 사랑을 욕망하기도 합니다. 무엇을 욕망하든 간에 욕망 그 자체는 비난의 대상은 아닙니다. 또한 그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그리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나의 욕망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내가 얻은 만큼 타인은 잃어야 하는 경우가 아주 흔하니까요. 그런 욕망은 사회적 격차나 갈등의 본질적인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권력이든, 명예든, 자본이든, 사랑이든 나의 내면적인 욕망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어느 정도까지는 수용할 수 있습니다.
더 문제가 되는 욕망은 내 욕망이 아닌 타자지향적인 욕망입니다. 나의 행복이 아닌 타인의 눈에 비치는 나의 행복 말입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시킵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지닌 욕망은 대체로 부모들의 것입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지닌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사는 것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 아이는 자신의 고유한 욕망이 무엇인지 생각할 여유를 가지지 못합니다. 나는 나인데 내가 없는 것입니다.
욕망이 그렇게 흘러가면 어른이 되어도 타인의 시선에만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 시선은 대체로 나의 내면에까지 들어오지 못하고 외면에 머물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자신에게 유용한 선택보다는 타인들이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유용성에 집착하게 됩니다.
'캐나다 구스'라는 생경한 단어가 회자된 적이 있습니다. 극한의 추위를 막아준다는 명분 아래 점퍼 하나가 100만원을 넘어섭니다. 신기한 것은 매장에 점퍼가 없어서 못 살 지경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나의 유용성이 아닙니다. 라캉의 말처럼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 것이지요. 주변을 한번 둘러보세요. 대부분의 욕망들이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나요? 이제 나의 유용성을 위한 나의 욕망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욕망이라는 연료를 들이붓고는 대립과 경쟁이라는 두 개의 바퀴를 달고 성공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기관차입니다. 대립과 경쟁은 필연적으로 패배자를 만들어냅니다. 성공하더라도 그 시스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개인의 욕망을 만족시키지도 못할뿐더러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성공할 수도 없는 시스템입니다. 살아있을 때는 살아남기 위해 같은 트랙만을 끊임없이 돌아가는 경주, '적당히'로는 결코 오늘을 이겨나갈 수 없는 시스템 말입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공'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모두가 달려가는 열차에 타고 있다면 그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용기도 가르쳐야 합니다. 말을 달리다가도 때론 잠시 내려서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는지 살피며 기다리는 아메리칸 인디언처럼, 설국열차의 닫힌 문을 열고 언 땅에 내려선 요나처럼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실천적인 용기도 가르쳐야 합니다.
그 역할의 출발이 선생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님들부터 시스템이 제공한 욕망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바라보는 아이들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으로 귀결된다면, 그것이 선생님들의 본질적인 욕망으로 자리 잡는다면 그것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둘러보면 여러 선생님들이 그리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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