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기행 아시아를 가다] 고산족 순례-(1) 몽족의 상례

입력 2014-06-26 14:06:49

◆슬픈 분위기 찾기 힘든 풍경

이 산속에서 7일장(葬)은 상당히 살만한 집에서 지내는 듯하며 살림살이에 따라 제례일도 다르다. 날짜가 지나갈수록 오는 사람도 줄어들고 그에 따라 야참도 나오지 않는다. 몽족 청년들과 상가에 간다. 냄새라도 없앨 양인지 실내는 여전히 숨쉬기 힘들 정도로 향냄새로 꽉 차 있다. 연신 마이크로 누군가를 부른다. 특별히 고마운 사람들인지 조그만 앉은뱅이 의자에 앉히고 그 앞에 역시 비슷한 의자를 놓고 2잔의 술을 따른다. 가족들 대표자 두 사람이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아래위로 흔들면서 중국식으로 보이는 인사를 두 번 한다. 서로 덕담을 하다 독한 40도 몽 위스키 두 잔을 단숨에 마시는데 10대 청년들도 거침없다.

죽은 자 옆에 산 자들이 모여 즐겁게 웃고 떠들며 슬픈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그렇게 수천 년 이 땅에도 사람들은 살아오고 그들의 전통은 이어져 왔을 것이다. 80세 할아버지가 1시간여 가까이 북을 치더니 내친김에 '캔'(can)까지 한참 동안 분다. 체력이 대단하고 발동작에는 흥이 올랐다. 이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이며 캔도 가장 잘 불어 마을 사람들에게 전수해 주는 분이다. 심취해서 부는 할아버지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8시가 넘어가자 일을 끝내고 하나 둘 몰려드는 동네 사람들, 마당이 금방 소란해진다. 어디서 빌려왔는지 두루마리 화면을 내리고 영화를 보여준다. 이 오지 산속에도 문명의 물결은 급하다.

◆웃음이 많은 선한 사람들

밤이 되자 관 주위에 아낙들이 더욱 많아지는데, 아이들은 무서워하거나 피하는 기색 없이 엄마 곁에 앉아 있다. 뒤늦게 도착한 자손들이 종이꽃과 판자 위에 무늬를 수놓은 것을 영정 아래에 놓는다. 마을 정자에서 나에게 한국어 몇 마디 관심 있게 배우던 28세 찡쯩 리가 나를 보더니 서투른 한국어로 인사하며 살갑게 챙겨준다.

그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름도, 지도 어디쯤에 있는지도 한 번 본 적이 없다. 단지 , , 로 어렴풋이나마 이 지구상에 그런 나라가 있다고 짐작할 뿐이다. 17살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그의 부인은 한 살도 안 된 아기를 업고 있다. 그들과 독한 35도 타이 위스키를 마시고 옆에서는 포커를 한다. 권총을 가지고 다니며 술과 포커를 유난히 좋아하는 더 썬이라는 깔리양족 사내는 밑천이 없는지 나에게 돈을 달라고 한다. 부엌 안에는 아낙들이 모여 마일로 초콜릿 차에 노란 설탕을 보약처럼 듬뿍 넣고 거기에 커피까지 섞어 마신다. 모든 것이 귀하던 60, 70년대, 명절날 설탕 선물은 우리에게도 특별한 것이었다.

웃음기를 잔뜩 머금은 선한 얼굴들 속에 그 옛날 시골마을 우물가 풍경이 떠오른다.

◆깔리양족 마을에서

깔리양족 마을에 꾸이띠야오(국수)집이 하나 있는데 오늘 한 집이 또 새로 생긴다. 젊은 주인 여자는 오바또에서 청소를 하는 사람이다. 집 마당에는 정미 기계 한 대가 있고 남편이 운영한다. 또한 그는 몽족 마을로 학교를 다니는 깔리양 족 아이들을 위해 쏭태우 스쿨버스도 운행한다. 집집마다 마당에는 닭과 돼지들이 지천으로 있다. 개업이래야 특별한 것은 없다. 평소 쓰던 긴 탁자 1개, 조그만 장작불 화로 위에 놓인 원통형의 양은 솥 하나가 전부다.

어두워져 오는 삼거리 정자 옆에는 난장을 펴고 조잡한 복사본 영화 시디와 옷을 파는 아줌마들도 둘이 앉아 있다. 작은 마을이라 손님도 별로 없다.

마을 곳곳에는 파란 파이프가 여기저기 보인다. 이 오지까지 수돗물이 올리가 만무하다. 수돗물이 필요할 것 같지도 않은 산마을은 지천에서 나오는 물줄기를 수백 미터, 때로는 수천 미터까지 연결해 사용한다. 인적이 미치지 않은 계곡이나 산기슭에서 수많은 나무뿌리들을 거쳐 나온 보약 같은 물이다. 그 물로 매일 샤워를 하니 피부도 도시민과 비교하면 더 좋을 듯하다. 가끔 인사를 나누는 쉰 살의 사내가 빠진 수도관을 다시 끼워넣고 있다. 종일 일하다 왔는지 그와 37세 젊은 아내의 옷이 흙범벅이다. 그는 스무 살 때 동갑내기 깔리양 처녀와 결혼을 했는데 10개월 만에 아기를 낳다가 부인이 아들만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그러다 30세에 인근에 사는 열일 곱 소녀와 결혼하며 세 명의 자녀를 더 두고 있다.

◆마을마다 있는 교회들

산골짝마다 조그만 촌락을 이루며 수많은 고산족들이 살아가는 산 마을. 대부분 마을마다 작은 교회가 하나씩 있는데, 쿤 맬라노이 마을은 특별하게 두 개의 교회가 있고 깔리양 신부와 목사님이 사목한다. 일요일 아침이면 예배가 있는 데 특별한 놀거리가 없는 아이들은 일찍부터 교회로 몰려온다.

깔리양족 사람들은 기혼과 미혼의 옷차림이 다른데 소녀들이 입은 순백의 원피스 타입의 옷은 성녀라도 보는 것처럼 청결하다. 결혼한 뒤에는 투피스로 진한 밤색이 많이 들어간 줄무늬 전통 옷을 입는다. 미사를 보기 위해 소녀들 몇이 엄마의 오토바이 뒤에서 내린다. 그들과 나이가 비슷한 아낙도 아기를 옆으로 들쳐메고 온다. 성당 입구 작은 새끼 돼지 한 마리, 상당히 큰 뱀을 우적우적 잘도 씹어먹고 있다. 대부분 동전을 꺼내 헌금을 하자 나도 20바트(800원)를 넣었다. 바라는 것이 적은 사람들, 본 것도 경험한 것도 적으니 바라는 것 또한 그러하리라.

윤재훈(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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