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새콤한 과일을 좋아한다. 타고난 게으름 때문인지 수박이라든가, 포도처럼 씨를 분리하고 먹어야 하는 과일엔 도통 손이 가지 않지만 레몬과 귤, 오렌지처럼 먹기 편하면서도 상큼하고 새콤달콤한 맛을 내는 과일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레몬의 경우에는 그냥 생으로 먹기엔 조금 지나치게 새콤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새콤한 과일에 반색하는 나와는 반대로, 우리 집 고양이들은 레몬을 참 싫어한다.
레몬에 견주면 달콤하기 그지없는 오렌지의 경우에도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다가도 껍질을 벗기기 시작하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난다. 괜히 장난기가 발동해 껍질을 벗긴 손으로 안으려고 다가가기라도 하면, 그때는 정말 질겁하며 도망간다. 아무래도 사람에 비해 후각이 예민한 고양이이기 때문일까, 사람들이 느끼기엔 상큼하고 달콤한 향기가 녀석들에겐 조금 과하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런 새콤한 향을 풍기는 과일을 제외한 대다수의 음식에 녀석들은 보통, 싫지도 좋지도 않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누군가가 부엌에서 식사 준비로 달그락거리고 있을 때면 늘 곁에 와서 관심을 보이긴 하지만, 녀석들의 시선이 집중된 곳은 사람의 음식이 아닌 오직 자신의 간식 그릇뿐이다.
앨리샤의 경우엔 그래도 우리의 식사시간에 다가와 항상 '너네는 뭘 먹니?' 하듯 와서 이리저리 킁킁대며 관심을 보이기도 하지만 체셔의 경우엔 무언가 고양이용 음식을 주지 않으면 미련 없이 휙 돌아서 우리 곁을 떠나곤 한다. 가끔 체셔가 먹어도 될 만한 것을 줄 때도 만약 그게 체셔에게 낯선 음식이라면, 한참을 확인하고 망설이고 나서야 먹거나, 아니면 먹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등 그 나름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체셔에게도 먼저 와서 달라고 보채게 만들 수 있는 먹을거리가 있다. 체셔가 바로 '크림'색의 고양이이기 때문일까, 묘하게도 녀석은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크림'을 좋아한다. 그래서 슈크림 빵을 사왔거나, 크림이 듬뿍 올라간 케이크를 먹는 날이면 평소와는 달리 매우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앨리샤야 다 먹고 놓아둔 우유잔에 머리를 들이밀고 싹싹 핥아먹을 정도로 평소에도 우유를 좋아하는 위험천만한 녀석이니만큼 크림을 좋아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해 보이지만, 체셔의 경우엔 딱히 그렇지도 않기에, 크림에 보이는 녀석의 관심은 정말 묘할 따름이다. 물론 단 음식은 고양이들의 몸엔 그다지 좋진 않다기에 처음에는 주지 않으려 하지만, 녀석들의 눈빛에 마음이 약해져 손가락에 조금 찍어서 얼굴 앞에 내밀면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손가락 끝에 묻은 크림을 싹싹 핥아먹는다. 이때의 까슬까슬한 혓바닥의 느낌이 신기해서, 녀석들이 즐거워하는 표정이 보기 좋아서, 크림이 우리 집에 있는 날엔 그래도 소량이니까 괜찮겠거니 하며 여지없이 녀석들에게 맛보여 주곤 한다.
사실 나는 생크림이 듬뿍 올라간 케이크나, 슈크림 빵을 그다지 즐기진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삼계탕을 끓이는 날이면, 자연스럽게 녀석들이 먹을 닭 가슴살을 미리 살짝 떼어내 놓듯, 빵집에 들르면 나도 모르게 슈크림 빵으로 시선이 향하게 되었다.
물론 매번 슈크림 빵을 사는 것은 아니기에 녀석들이 크림을 먹는 날은 일 년 중에 손꼽힐 만큼 적은 횟수이긴 하지만, 유독 녀석들 생각이 많이 나는 날이면, 또는 조금 울적할 때 빵집을 들를 때면, 녀석들이 크림을 보며 즐거워 할 모습이 생각나서 슈크림 빵을 집어들게 된다.
여전히 나 자신은 크림 맛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크림의 달콤함과 부드러움은 우리 집 고양이들을 통해 내게 좀 더 따뜻하고 기분 좋게 전해져 오기에, 이제 크림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크림색 고양이의 반려인답게 말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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