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의 3중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인간 세상의 고통은 모두 사라진다. 온 세상이 이전보다 더 밝아진다" 로베르트 슈만이 한 말이다. 평생을 가난과 체념 속에 살았던 슈베르트 (1797~1828). 슈베르트를 말할 때 흔히 베토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슈베르트가 베토벤을 너무나 숭배했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살아서는 베토벤과 같은 위대한 음악가가 되는 것을 단념하고 죽어가는 순간 베토벤의 무덤 근처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던 슈베르트. 그는 하이든과 모차르트라는 천재를 배출한 빈 고전파의 마지막 대표자다.
슈베르트가 남긴 피아노 3중주 두 곡 중 2번을 들어 본다. 곡이 완성된 것은 슈베르트가 실의에 빠져 있던 죽기 1년 전인 1827년 11월이며 그해에 유명한 가곡집 '겨울 나그네'를 쓰기도 했다. 총 4악장 중 특히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2악장. 영화 '해피엔드'의 테마로 2번 2악장이 사용되어서인지 특히 이 곡이 많이 주목받았던 것 같다. 평소 자주 듣던 곡이라 욕망과 현실의 부조화를 그린 영화에 이 곡이 사용되었다는 건 개인적으로 유감인 부분이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비극적이고 어두운 느낌의 선율에 예기치 않게 빠져들었었다. 투명하고 유려한 선율 뒤로 한편의 수묵화처럼 고독감이 짙게 밴 첼로의 음이 다가왔던 순간 '이렇게 아름다운 곡을 비로소 듣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음악을 듣는 내내 슈베르트 특유의 그늘진 서정에 취해 혼자 망연해했던 기억이 난다.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늘 그랬던 것 같다. 아릿한 꽃향기가 훅 끼쳐오듯 선율에 끌려 현악 5중주를 듣다 처연함과 격정에 취해 사람들과 하루종일 어울릴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던 적이 있었다.
오늘은 격정적인 연주 스타일보다 따뜻한 톤을 바탕으로 절제된 앙상블을 보여주는 보로딘 3중주단의 음반으로 들어본다. 보로딘은 슈베르트의 작품에서 빼어난 기량을 보여준다. 강력한 힘과 긴장감, 과감한 템포 설정으로 새로운 감흥을 던져준다. 새로운 감흥 뒤에 덧붙여지는 연주의 편안함이 좋다. 1악장의 열정적인 합주에서 멜로디의 서정성을 잊지 않으면서 펼쳐지는, 박력까지 겸비한 연주와, 피아노가 리드하는 3, 4악장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리듬감, 피아노의 영롱한 터치가 가슴을 울린다. 특히 유난히 애착이 가는 2악장을 듣고 있으면 음울함 속에 빛나는 영롱함, 격정 속에 숨 쉬는 아련한 서정이 슈베르트의 내면 풍경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하다.
31세의 나이로 요절한 비운의 천재 작곡가. 작곡가에게 필수적인 악기인 피아노조차 살 여유가 없었던 슈베르트. 모차르트나 베토벤처럼 연주가나 지휘자로서의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오직 작곡만 했기에 생활은 말할 수 없이 궁핍했다. 다행히 피아노 3중주가 그 당시에도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으며 대중적으로 성공하였기에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고통으로 얼룩진 짧은 생애를 마감하는 시기에 창조된 고뇌가 있고, 열정이 있고 슬픔이 서려 있는 슈베르트를 듣는 기분은 그래서 행복하면서도 우울하다.
신동애(오디오 동호회 '하이파이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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