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문창극의 참극

입력 2014-06-19 10:42:33

국무총리에 대한 국회의 임명 동의를 규정한 인사청문회법을 도입한 것은 2000년이었다. 이후 현재 정홍원 국무총리까지 15명이 후보자가 돼 5명이 낙마했다. 2002년 장상, 장대환 후보자는 국회 임명 동의 표결에서 부결됐고, 2010년 김태호, 2013년 김용준, 2014년 안대희 후보자는 자진 사퇴했다.

인사청문회를 통과했던 인사들도 문제가 많았다. 탈세'탈루, 편법 증여 등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다면 당장 형사처벌이 가능한 건수도 있었다. 그러나 국민의 법 감정과는 달리 "잘못이 있었다면 국민께 사과드린다"는 옳지 않은 어법의 어정쩡한 사과를 하는 선에서 국회는 이들의 임명을 동의했다.

국무총리처럼 국회 동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인사청문회 대상자가 대법관,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 국무위원,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등까지 많이 늘었다. 이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돌이켜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나타난다. 거의 예외 없는 공통점은 위장 전입과 병역 문제로 이들에게 주민등록법과 병역법은 법도 아니었다. 또,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은 관행적 비리와 뇌물수수, 법조계 인사는 전관예우, 교수 출신은 제자 논문 가로채기와 표절 의혹이 빠지지 않았다.

요즘 언론인 출신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논란이다. 그런데 과거 다른 인사들처럼 재산 축적 과정이나 비리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인식이나 극우 같은 개인 신념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 아주 독특하다. 특히 종교를 덧씌워 표현한 일본의 식민 지배와 위안부에 대한 시각이 논란이다. 물론 그는 당연히 옳다. 그러나 이 옳음은 소신에 바탕해 글을 쓰는 언론인으로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믿고 따르는 신앙심 깊은 종교인일 때만이다. 국무총리 후보자로서는 그릇되다는 뜻이다.

소신은 권력지향적이었고, 종교적 신앙심은 하나님의 섭리를 빗대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온 삶을 기울여 투쟁한 독립투사나 그 시대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희생당한 이들을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명한 것은 국무총리라는 자리가 언론인의 소신이나 종교인의 신앙심으로 맡을 자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어떤 교감이 있는지는 알 수 없어도 현재 문 후보자는 여론과 여당 내부에서조차 나오는 사퇴 압력에도 '끝까지 가겠다'며 버티고 있다. 심지어 해외순방 중인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던 임명 동의안이 대통령의 변심(?)으로 귀국 후 제출로 바뀌었는데도 요지부동이다. 이러한 사태 변화가 무슨 뜻인지는 대통령만 알 것이다. 그러나 잠시만 생각하면, 만점을 주지 않으려고 삼각함수와 미적분을 뒤섞어 만든 수학문제보다는 훨씬 쉽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든, 이상동몽(異床同夢)이든, 대통령과 문 후보자는 어떤 꿈을 꾸고 있다. 꿈의 주제는 같은 데 걸림돌이 많아, 걸림돌을 치우기보다 꿈을 버리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문제다. 현재 문창극 후보자에게서 나타난 국무총리 후보자의 '참극'은 이번 정부 들어 김용준, 안대희 후보자에 이어 세 번째다. 대통령의 처지에서 보면 문 후보자가 사퇴하면 3패째다. 3패 모두 본선인 인사청문회는 가지도 못한 충격의 예선 탈락이다. 이 충격을 줄이려는 '신(神)의 한 수'가 '귀국 뒤 재가'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대통령은 이번 선택이 실패작인데다 직전의 안대희 후보자에 이어 2연패를 당한 꼴이니 어떤 식이든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순간 문 후보자의 문제는 인사청문회가 아닌 대통령의 책임지는 모양새 갖추기로 바뀌었다. 총 책임은 대통령 몫이지만, 사전 검증을 제대로 못 한 청와대 비서진에게 조금은 그 짐을 떠넘길 수 있다. 또, 국내에 없으니 시간을 벌 타이밍도 적절하다. 이런 점에서 '귀국 뒤 재가'는 '귀국 전 자진 사퇴'라는 대통령의 부탁으로 읽힌다.

이번 사태로 문 후보자는 자존심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그 상처는 언론인 또는 독실한 신앙인으로 산 개인 문창극이 아니라 국무총리 후보자로서의 문창극이 입은 것이다. 이 때문에 비리 문제로 낙마했던 과거의 어떤 후보자보다 떳떳하다. 문 후보자는 국무총리 후보자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언론인, 신앙인으로서의 자존심을 굳건하게 지켜주길 바란다. 이것이야말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할 '동화 속의 수호천사'라고 찬양했던 '바로 그분'을 수호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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