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의 시와 함께] 평화롭게

입력 2014-06-16 07:05:00

이시영(1949~ )

동양파라곤아파트 동쪽 정원 측백나무 옆

고양이 세 마리가 나와 자울자울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데

그중 두 놈은 흰 배에 검은 색 등이고

나머지 한 놈은 완전 호랑이 색깔이다

그런데 저렇게 평화로울 수 있다니!

-시집 『호야네 말』창비, 2014.

고양이는 사람보다 색깔이 다양하다. 아마 족보가 없고 혼인이 자유롭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색이 달라도 고양이는 고양이다. 이 시에는 세 마리의 각기 다른 색을 가진 고양이가 평화롭게 햇볕을 쬐는 풍경이 제시된다. 사람은 다른 색을 가진 사람을 경계하거나 배척한다. 그런데 고양이는 다른 색깔을 가져도 아무런 갈등 없이 평화롭게 공존한다. 시인은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갈등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었으리라.

고양이가 해바라기를 하는 풍경은 평화롭다. 평화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해주는 시어가 '자울자울'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자울자울'을 '잠이 들 듯 말 듯하여 몸을 앞으로 숙였다 들었다 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부사'라고 풀이하고 있다. 피곤해서 잠이 오는 것이 아니라 햇볕이 좋아서 자울자울 조는 것이다. 얼마나 가지고 싶은 평화로움인가.

일제강점기 이장희 시인은「봄은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봄의 평화로움과 생동감을 고양이의 모습에 비유하여 그리고 있다. 봄의 이미지를 가장 탁월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천재 시인은 젊은 나이에 고양이 시를 남기고 쥐약을 먹고 요절했다고 한다. 아이러니다. 당시 대구 갑부였던 그의 부친이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견디기 힘들어 했다고 한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기네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색깔이라도 칠해서 적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렇게 해야만 자기들의 권력이 견고해지기 때문이리라. 이시영의「평화롭게」는 이런 시대적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담겨져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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