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으로 다가 온 새터민] (상)대구경북 새터민들 현황과 목숨 건 탈북 과정

입력 2014-06-12 11:22:15

南 정착해도 北 가족 걱정뿐 '수수료' 절반 떼이고도 송금

새터민들은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에 터전을 잡은 이들이다. 통일시대에 대비하려면 이들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의 강점을 우회적으로 북한 동포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들이 어떤 현실에 노출돼 있으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더 나은 지원책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지역의 새터민들 현황과 목숨 건 탈북 과정

(중)지역 새터민들 중 성공 정착 사례

(하)통일 연습, 새터민과 소통하기

◆대구경북을 선택한 1천664명의 새터민들

탈북민들은 주로 두만강과 압록강 국경을 넘어 중국 땅으로 넘어간 다음 현지 탈북 중개업자(중국인 또는 조선족)에 의해 제3국(태국이나 베트남 등)을 거친 뒤, 대한민국으로 입국한다. 이후 하나원(통일부 소속의 북한 이탈주민들을 위한 사회정착 지원기관)에서 3개월 정도 사회적응 훈련을 받고, 전국 각지로 흩어져 정착하게 된다.

대한민국에는 2만4천350명의 새터민들이 있고 이 중 대구경북에는 1천664명(전체의 6.8%)이 살고 있다.

남녀의 비율로 보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전체 2만4천350명 중 70%가 넘는 1만7천470명이 여성인 반면 남성은 6천880명밖에 되지 않는다. 대구경북의 경우에는 전체 1천664명 중 여성이 1천241명으로 남성 423명의 3배에 육박한다. 이 통계는 생활고에 시달린 북한 여성들이 더 많이 탈북을 시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여성에 대한 감시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라고 새터민들은 전했다.

북한 이탈주민을 연령별로 살펴보면 30대가 7천573명으로 가장 많으며, 20대 7천113명, 40대 3천809명, 10대 3천351명 순이다. 연간 탈북민 수는 1998년부터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다 2009년 2천914명을 정점으로 올해까지는 계속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평균적으로 보면 매년 2천 명 안팎의 탈북자가 대한민국으로 들어오고 있다.

◆새터민들이 말하는 탈북 이유 3가지

지역에 정착한 새터민들은 목숨을 건 탈북 이유에 대해 ▷북한의 가족 부양 ▷대한민국에 대한 동경 ▷자유국가에서의 새 출발을 주로 꼽았다. 특히 북한에 머물고 있는 가족에 대한 부양은 절체절명의 문제였다. 경북 구미시에서 탈북민선교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김동국 목사는 "탈북민들을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고 싶지만, 때로 '가족이 눈앞에서 굶어 죽어 가는 걸 본 적이 있느냐?'고 반발하는 이들에게 할 말이 없다"며 "이들은 탈북 과정에서 지게 된 빚(탈북 브로커들에게 줘야 할 돈)과 가족 부양 때문에 목돈(1천만원 이상)이 필요해, 성매매'밀수'밀매 등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실제 새터민들이 대한민국에 살면서 번 돈의 절반은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경우가 많다. 지역의 탈북 담당 경찰관들에 따르면 새터민들이 이곳에서 1천만원을 보낼 경우에 국내 및 중국 브로커들과 북한 내에서 가족에게 돈을 건네주는 보위부 소속 군인 또는 비밀업자 등이 중간 수수료를 떼고, 실제 400만∼500만원 정도만 전달된다고 한다. 이 돈도 부양가족들에겐 생계에 큰 보탬이 된다.

한국사회에 대한 동경도 탈북하는 주요 동기가 되고 있다. 탈북민들은 북한에 있을 때부터, 중국과의 국경 근처에서 다양한 루트(인터넷, 스마트폰 등)를 통해 풍요로운 대한민국 사회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몇몇 새터민들은 "북한에 있으면서, 대한민국 연예인들 뉴스도 많이 봤다. 특히 탈북자들 중에 돈도 많이 벌고, 성공적으로 정착한 이들 얘기를 들으면서, 탈북을 결행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사회주의식 배급 체제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부자 세습 체제에 대한 부정으로 대한민국으로 넘어오는 탈북민들의 경우는 주로 대학교육 이상을 받은 지식인들이 많다. 이데올로기적 선택을 한 이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빨리 적응해 자유국가에서 제 역할을 잘 찾아가는 편이다.

◆탈북여성 10명에게 들은 목숨 건 탈북 과정

"굶주리는 북한에서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습니다. 결국 한국만이 살길이라고 여겼습니다."

북한에서 탈출해 대한민국으로 오는 길을 그 루트에 따라 '급행'(중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직행)과 '경유'(중국에서 제3국을 거쳐 들어옴)로 나뉘어 부른다. 비용은 '급행'(800만∼1천만원)이 갑절 이상 비싸다. 중국으로 넘어오는 데 1차 브로커가 돈을 챙기고, 대한민국으로 입국하는 데 2차 브로커가 또 고액을 요구한다.

대구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탈북여성 10명이 A4용지에 쓴 탈북 동기 및 과정을 받아보니, 대부분 경제적 궁핍에 못 이겨 국경을 넘은 경우가 많았다. 다소 의외인 것은 북한에서도 '생계형 탈북'에 대해서는 그리 가혹한 처벌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정화(28) 씨는 함경도 무산에서 살다가 14세이던 1998년 4월, 보름 동안 굶주린 끝에 탈북해 중국에서 3년 동안 생활했다. 하지만 중국 공안에 잡혀 북송됐다. 북한에서 감시받는 고된 생활이 계속됐고, 2007년 5월에 다시 어머니와 탈북을 시도해 중국 심양 인근 마을에서 6년 동안 숨어 지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에 중국 브로커를 통해 제3국인 태국을 거쳐, 12월에 꿈에 그리던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새터민들의 여러 사례를 보면, 단번에 탈북에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문란영(39) 씨 역시 처음 탈북에 성공했지만 중국 장춘행 열차에서 공안에 잡혀, 북송돼 1년 넘게 경한수용소 노동단련대에서 고통받다 또다시 두만강을 넘어 재탈북을 시도했다. 장써니(39) 씨는 중국에서 2번이나 공안에 잡혀 북송됐음에도,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다'며 결국 또다시 국경을 넘었다.

채다인(46) 씨도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던 1990년대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몇 번씩이나 국경을 넘으려 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혼자서 탈북에 성공해 대한민국으로 들어왔다. 문가람(32) 씨도 세 살배기 아들을 북한에 둔 채 두만강을 건넜다.

이들 탈북 여성들은 대부분 300만∼500만원을 중국 브로커들에게 건네고, 태국'베트남 등을 통해 자유의 땅을 찾아온 우리 동포들이다.

기획취재팀=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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