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활의 풍류산하] 말(馬)에 관한 슬픈 전설

입력 2014-06-05 14:12:11

봄의 끝자락에 충남 홍성 용봉산에 올랐다. 해발 381m에 불과하지만 산이 온통 바위로 덮여 있어 충청도 사람들은 소금강이라 부른다. 종주 코스가 그리 짧은 것도 아니다. 능선의 봉우리와 바위들이 수석 전시장처럼 줄지어 있고 그 사이사이에 소나무와 잡목들이 분재처럼 박자를 맞추고 있다. 아무리 빨리 걷고 싶어도 주변 풍광은 '천천히 걸으라'며 끌어당기고, 밀리는 인파는 앞길을 가로막는다. 네다섯 시간은 금강산인(金剛山人)이 되어야 한다.

산의 몸통은 용을 닮았고 머리는 봉황의 모습이라 하여 이름 하나는 거창하게 잘 지었다. 용봉산에서 수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투석봉, 노적봉, 악귀봉, 용바위봉이 키재기를 하고 있다. 또 암봉 사이에 버티고 있는 용바위, 사자바위, 살개바위, 촛대바위, 행운바위, 병풍바위 등 좀 생겼다 싶으면 멋진 이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이름난 봉우리나 잘생긴 바위도 첫 대면 때 신기할 뿐 자주 보다 보면 그게 그것으로 별 감흥이 없어진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메릴린 먼로를 데리고 살던 남편들도 아내 보기를 용봉산 바위 보듯 했으니까 그녀들도 바람이 나서 이 남자 저 남자의 품 속을 더듬고 다녔겠지.

종주 코스의 중간 지점인 최영 장군 활터 입구에 이르자 이야기 한 자락이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그게 바로 스토리텔링이라는 거다. 최영 장군의 소년 시절 이야기를 하나의 전설로 풀어놓았다. 장군은 애마의 달리기 실력이 궁금하여 내기를 걸었다. 화살보다 빨리 달리면 큰 상을 내리고 화살이 빠르면 말의 목을 친다는 조건이었다. 말은 자신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홍성읍 동남쪽 5㎞ 지점에서 읍내 은행정 방향으로 활을 쏘았다. 말은 질풍처럼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으나 화살은 보이지 않았다. 장군이 약속대로 애마의 목을 치는 순간 화살이 피융하며 지나갔다. 장군은 크게 후회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그 자리에 말을 묻어 주었다. 지금도 은행정 옆 국도변엔 금마총이란 말 무덤이 있다.

전설이란 게 이렇게 황당하다. 말이 어떻게 화살보다 빠를 수 있으며 사람이 어떻게 말과 내기를 걸 수 있을까. 전설이란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만들어야 재미도 있는 게 아닌가. 용봉산 밑에 있는 최영 장군의 활터 역시 변변한 사대(射臺)와 과녁 자리가 없는 것으로 보아 후세의 사람들이 말(言)로 터를 닦은 가식의 땅임이 분명하다.

이런 전설은 다른 마을에도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가면 마비정(馬飛亭)이란 정자가 있다. 이 정자에는 예부터 슬픈 전설 하나가 전해 오고 있다. 어느 장군이 동네 앞 높은 산에 올라가 타고 온 말에게 말했다. "활을 쏠 테니 화살보다 먼저 도착하면 살려주지만 늦게 도착하면 너를 죽일 수밖에 없다."

말은 장군의 일방적인 제안을 거절할 수 없어 죽을 힘을 다해 달렸지만 화살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장군은 말의 목을 베어 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너무 안타까워 말이 죽은 자리에 정자를 짓고 원혼을 달래 주었다. 전설은 무자비한 냉혈 장군을 위인으로 만들고 말은 칼에 목이 베이는 역할을 담담하게 수행할 뿐이다. 전해 내려왔고 후대로 전해 내려갈 전설이라고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도 되는 것인가.

역사 속에서 전설화해가고 있는 화랑 김유신의 말도 사정은 하나도 나을 게 없다. 술 취한 김유신이 말안장 위에서 꾸벅 졸다가 눈을 떠보니 천관이란 애인의 집 앞이었다. 김유신은 어머니인 지증왕의 손녀인 만병부인의 말씀을 좇아 '다시는 기방 출입을 삼가겠노라'고 맹세했지만 주인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 말은 전후사정을 알 턱이 없었다.

말은 천관의 집에 갈 때마다 그 집 하인들이 던져주는 홍당무를 자주 맛본 터여서 이날도 한 점 얻어먹을 욕심으로 멋모르고 끄덕끄덕 그 집 앞으로 걸어갔겠지. 말이 무슨 죄가 있나. 죄가 있다면 기생집 딸과 연애한 김유신에게 물어야 마땅하다. 김유신은 15세에 화랑이 되어 얼마 안 있어 화랑의 우두머리인 풍월주가 된 청년이다.

김유신이 이날 밤 애마의 목에 칼질을 한 것은 두 가지 목적 때문으로 보인다. 첫째는 가문의 배경이 든든한 어미의 신임을 확실하게 다져두기 위함이며, 둘째는 한때 사랑했던 여인이 진로의 방해가 될 것을 염려하여 말의 피를 보여줌으로써 단념을 유도한 것은 아닐까.

말에 관한 슬픈 전설은 난세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자화상이자 흉터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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