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광장] 산수화를 그리는 마음

입력 2014-06-03 10:36:40

성리학은 고대 동양사회에서 사상, 경제, 문화 전반에 걸친 유학의 새로운 경향이었다. 이 새로운 경향의 학문이 나타나면서 유학은 노장 사상과 불교 사상을 가미하여 우주의 생성, 인간 심성의 구조에까지 체계화하게 된다. 성리학은 자연계와 인간사회를 천리(天理)로 설명한다. 여기서 하늘은 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만물의 변하지 않는 법칙을 말한다. 그런데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현 상태는 늘 변하며 이 모든 원인을 기(氣)에 둔다. 따라서 이 시대의 유학자들은 기로 인해 리(理)의 방해를 막고 온전히 본질적인 이치를 터득하기 위하여(格物致知) 끊임없이 노력했다(修養).

성리학이 송(宋)대에 탄생한 것도 시대 상황의 결과이다. 송은 강성한 주변국의 위협 속에 존재했지만, 사상적 측면과 경제 문화 예술 측면에서는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북송의 수도 변경(지금의 개봉)의 거리를 그린 장택단의 대걸작품인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를 보면 당시의 다양한 생활 문화상을 알 수 있다.

이런 그림의 등장은 첫째 농민이 노예 생활을 벗어나 상대적으로 신분의 자유를 얻었고, 둘째 수공업이 발달했으며, 셋째 정부가 시장을 통제하지 않아 상업이 발달했고, 넷째, 인구 10만 이상의 대도시가 여러 곳 생겨났으며, 다섯째 운하의 발달에 힘입어 대륙 남북 사이의 교류에 기반을 둔 경제와 상업의 발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송대는 문화적으로 신흥 사대부 문인들이 독립적이고 사회적 지위를 가질 수 있었다. 예술작품을 인격과 동일시할 수 있다면 이것은 당시 수신(修身)의 문제를 중요시한 시대의 반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송대는 문치 시대였으므로 사대부들은 '나라에서 등용하면 활동하고, 버리면 은거한다', '나라에 도가 있으면 함께 천하를 구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몸을 깨끗이 한다'는 유가(儒家) 정신에 따라 벼슬을 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은 왕에게도 도덕적 규율을 엄격히 지킬 것을 요구했지만 스스로도 관리로서의 사회적 책임 완수를 위해 끊임없이 수신에 노력했다. 그들은 스스로 정치적 이상이 현실에서 반영되지 않았을 때 자연으로 돌아가 은거하며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전원에 은거할 수 없을 때에는 산수를 그리며 수신의 의지를 드러냈다. 북송의 화가 곽희는 '군자가 산수를 애호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소양을 키울 수 있는 전원에 살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벼슬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전원에 은거하여 사는 일은 불가능했으므로, 사대부들은 훌륭한 솜씨를 얻어 집과 뜰에 앉아서도 산봉우리와 골짜기를 오르내릴 수 있고, 원숭이와 새들이 우짖는 소리가 마치 귀에 들리는 듯하고, 산수의 광경이 눈에 홀리듯 황홀하게 보이는 생생한 산수를 표현하고자 했다. 송대 사대부들은 그렇게 뛰어난 산수화를 그리는 창작 과정을 수신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으로 삼았고, 훌륭한 산수화를 감상함으로써 전원생활의 수신을 대신하고자 했던 것이다.

북송의 회화이론가인 곽약허는 역시 그의 저서 '도화견문지'에서 "인품이 이미 높으면 기운이 높지 않을 수 없고, 기운이 이미 높으면 작품이 생동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며 예술작품의 품격을 예술가의 인격과 동일시했다. 과거의 문인들은 이렇듯 현실에서나, 혹은 현실은 떠난 상태에서도 스스로 인격을 유지하기 위해 게을리하지 않았고, 그러한 삶의 자세를 지향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옛날의 지식인들은 지도자에게 엄격한 도덕적 규율을 요구하는 시대정신을 알았기에, 스스로 사회적 책임 완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따라서 자연으로 돌아가 은거할 때에도 창작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수신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오늘날 지식인을 표방하는 이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자신의 욕망을 위해 고된 인내와 노력을 감수하는가? 그렇지 못한 때에 은거하고 수신하는가? 과거의 지식인들이 '산수화'를 그리며 스스로 수신에 힘쓴 데 비해, 현대의 지식인들은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산수'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산수화를 그리는 마음'이 새삼 그리운,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이 유난히 기대되는 때가 바로 오늘 현재가 아닌가 혼자 생각해본다.

정연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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