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만어] 정신 말기암 앓는 사회

입력 2014-06-03 07:58:07

김영삼정부 시절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비행기를 타고 여객선을 타며 지하철을 이용하고서 백화점에서 쇼핑하면 결국은 죽고 만다"라는. 웃지 못할 이런 유머가 퍼졌던 것은 당시 끊이지 않던 대형 재난사고 때문이었다. 한강 다리가 뚝 끊어지고 지하철 건설현장에서 가스가 폭발하고 백화점이 무너졌다. 하늘에서 여객기가 추락하고 바다에서는 여객선이 침몰했다. 하늘과 땅, 지하, 바다를 돌아가며 재난사고가 속출하고 국가적 위기관리의 총체적 무능이 드러나더니, 결국 대한민국호는 6'25전쟁 이래 최대 국란이라는 IMF 외환위기까지 맞았다.

세월호 참사의 충격과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요즘, 대형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요양병원 방화로 21명의 노인환자가 숨지는 등 전국 곳곳에서 방화 범죄가 속출하고 있다. 서울의 지하철에서는 재판에 불만을 품은 70대 노인이 시너를 갖고 차량에 불을 질렀다. 사회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묻지마식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뇌병변으로 신병을 비관한 50대 남자가 지하철에 불을 질러 192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참사와 판박이로 닮았다.

이번 사건이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와 달랐던 점은 지하철 차량의 의자가 불에 잘 안 타는 재질로 돼 있어 다행히 큰불로 번지지 않았고, 주변 시민들과 당국의 기민한 대응에 의해 조기 진압됐다는 점이다. 대구지하철 방화참사 이후 국내 지하철의 의자와 벽체, 바닥은 불연'난연재로 교체됐고, 지하철 화재에 대한 당국의 대응 매뉴얼도 개선됐다. 만약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참사를 겪지 않았더라면, 끔찍한 대형참사가 이번에 서울에서 재연됐을 것이다.

실수를 통해 교훈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통해 교훈을 배우지 않는다. 이 같은 기억 상실은 물질만능주의와 극단적 이기주의를 배양액으로 삼는다.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나라는 경쟁이 판을 치는 사각의 정글로 변했다. 삶은 전쟁처럼 변했고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이제는 나와 가족의 안전을 위해 주위 사람들의 정신상태를 살펴봐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감정은 전염되고 사회의 주목을 받은 사건은 모방범죄를 부르기에 불안스럽다. '정신 말기암'을 앓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 사회, 과연 치료할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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