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通] 독립책방 '폴락'의 다섯 주인장들

입력 2014-05-31 07:57:17

"월세 낼 20만원도 못 벌 때 많아, 돈 벌려고 한 일이면 벌써 접었어야죠"

"서점요? 재밌어서 하는 일이에요!" 올해 만 서른인 동갑내기 다섯 여자는 대구의 독립잡지 전문 서점인 '폴락'(Pollack)의 주인장이다. 김수정, 최성, 김인혜, 손지희, 허선윤 씨.(왼쪽부터)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모든 사람들이 '돈'을 따라 산다면 세상은 참 재미없을 것 같다. 올해 만 서른, 동갑내기 다섯 여자가 하는 일도 참 돈 안되는 일이다. 벌써 3년째 적자인데도 마냥 웃는다. 김인혜 씨와 김수정 씨, 최성 씨와 손지희 씨, 허선윤 씨가 그 주인공이다. 각기 다른 직업을 갖고 있지만 이들은 모두 서점 '폴락'(Pollack)의 공동 주인이다. 이곳에서 파는 책도 예사롭지 않다. 대형 서점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엉뚱한 독립 잡지가 이곳 도처에 널려 있다. 색종이를 접어놓은 것 같은 사진기(?)부터 도마 모양을 형상화한 요리 잡지, 연필 깎는 법을 체계적으로 알려주는 책까지 구경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난다. 28일 저녁, 대구 남구 대명동에 있는 폴락을 찾아 다섯 여자와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폴락, '즐거운 아지트'

폴락이 자리 잡은 곳은 소박하다. 맞은편에는 커피숍, 한 집 건너서 밥집과 맥주집, 강렬한 빨간색의 짬뽕집 간판이 폴락의 배경이 된다. 인터뷰 시간을 저녁 7시로 잡은 것은 주인장 다섯 명이 다 모일 수 있는 시간으로 조율했기 때문이다. 두 명은 당분간 자발적 실업자의 길을 택했고, 세 명은 직장인이다. 일하면서 책방 사장까지 자처하는 부지런한 여자들이다. "재밌어서 하는 일이에요. 폴락이 우선순위고, 직장이 2순위예요. 회사에서 돈 벌어서 폴락 운영하는 데 쓰잖아요. 하하." 누군가 말했다.

이들은 계명대 미디어영상학부를 졸업한 같은 과 동기들로 10년 지기 친구다. 어쩌다가 한배를 타게 됐을까. "우리는 취향이 비슷해요." 인혜 씨가 명쾌하게 설명했다. "다른 친구들한테 보자고 하면 잘 안 보는 영화, 인디밴드 공연들, 우리 다섯 명 모두 이런 걸 좋아했어요. 전주국제영화제도 뭉쳐서 자주 갔어요. 최근에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라는 영화를 같이 봤어요. 혹시 아세요?" 기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동성애 영화"란다.

'절친'(친한 친구)들은 뭉쳐서 놀 장소가 필요했다. 공간의 의미도 확장했다. 우리끼리 노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놀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들기로 다섯 명이 합의했다. 처음에는 지역의 젊은 예술인들이 모이는 대구 방천시장 김광석 거리 쪽을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높은 임대료 탓에 다른 곳을 물색했다. 그렇게 찾은 곳이 계명대 대명동 캠퍼스 근처였다. 월세 20만원짜리 1층 건물은 원래 낡은 주막이 있던 자리다.

왜 하필 서점이었을까. 기록을 디지털로 남기는 이 시대에는 소유의 의미도 희미해진다. 폴락 주인장들은 인쇄 매체의 매력을 여기서 찾았다. "그런 느낌 있잖아요. 손으로 만지고, 내꺼니까 소유하고, 소장하고 싶은 느낌이요." 처음에는 서점이 아니라 잡지 제작을 목표로 했다. 책과 잡지를 좋아했던 인혜 씨의 의견을 존중해 잡지를 만드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어쩌다 보니 제작 대신 독립잡지를 유통하는 대구 최초의 서점이 됐다.

낡은 공간은 다섯 명이 직접 손질해 지금의 폴락으로 만들어졌다. 이 좁은 가게를 꾸미는 데 꼬박 3개월이 걸렸다. 내부 공사는 각자 성격에 맞게 역할 분담을 했다. 거침없는 성격의 인혜 씨는 벽의 합판을 뜯어내고 쇠기둥을 뽑는 '철거'를, 수정 씨는 이를 부수고 해체하는 파괴를 담당했다. 선윤 씨는 미적 감각을 발휘해 페인트칠을, 꼼꼼한 최성 씨와 손지은 씨는 바닥에 타일을 깔았다.

◆폴락을 찾는 사람들

폴락에는 '베스트셀러'가 없다. 고객들의 취향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인기가 한쪽으로 몰리지 않는다. 수상한 책방을 찾는 손님들도 평범하지 않다. 지은 씨가 먼저 운을 뗐다. 한 번에 잡지를 10만원어치 사간 '큰 손 고객' 이야기였다. "외국인 단골이었는데 얼마 전 자기 나라로 돌아갔어요. 폴락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와요. 그분들한테는 우리나라가 외국이잖아요. 또 '소장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폴락에 많이 와요." 무가지인 대구 예술잡지 '브래킷'(bracket)의 외국인 에디터도, 일주일에 한 번씩 들러 잡지를 사는 예술고 학생들도 폴락의 단골이다.

햇수로 3년째, 그만큼 폴락이 이룬 업적도 많다. 지난해 10월, 수정 씨와 선윤 씨는 2009년 다녀왔던 이집트 여행기를 엮어서 'Egypt troubler'(이집트 트러블러)라는 여행책을 냈다. 여행자를 뜻하는 '트레블러'가 아니라 말썽꾼인 '트러블러'다. 선윤 씨는 "책 제목처럼 이집트에서 우리가 사고 친 이야기를 엮은 것"이라며 사막이 배경인 책 표지를 내밀었다.

폴락은 엄연한 '음반 제작사'이기도 하다. 지난해 한국 뮤지션인 Sima Kim(시마킴) 과 일본 뮤지션인 American green(아메리칸 그린)의 합작 앨범인 'Music for Dorothy'를 제작했다. CD를 굽고, 앨범 표지 디자인 제작까지 모두 폴락이 해냈다. 또 올해는 대구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토크 콘서트인 '폴락이다'를 기획하기도 했다. "그냥 재밌게 놀기만 했다"더니 지나친 겸손이었다. 훗날 폴락이 기획하는 콘서트에 꼭 섭외하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묻자 "기회가 된다면 김경주 시인과 김봉현 음악 평론가를 꼭 모시고 싶다"며 꼭 집어 말했다.

◆폴락이 얻은 것, 잃은 것

다섯 여주인은 폴락을 하며 얻은 게 많다. 사실 돈으로 계산하면 잃은 게 더 많다. 월세 20만원은 잡지 판매 수익금으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때도 많아 회비를 걷어서 충당한다. 매달 적자가 나는 건 아니지만 흑자가 난다고 해도 몇백만원이 아니라 몇만원이다. 돈을 보고 덤빈 일이라면 벌써 접었어야 했다.

남은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결혼 1개월 차 수정 씨는 폴락을 인연으로 만난 남자와 결혼했다. 그는 "이 동네 카페에서 3주년 기념행사를 했는데 거기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데이트도 폴락에서 했다"며 만족해했다. 폴락이 중매쟁이 역할만 한 것은 아니었다. 현재 디자인 회사에 다니는 인혜 씨는 폴락을 찾아온 회사 관계자의 일자리 제의를 받고 현재 직장에 정착했다.

폴락이 준 최고의 선물은 '친구'다. 폴락은 20대 전체를 함께한 친구를 30대가 돼서도 매일 볼 수 있게 한 반강제적인 모임이다. "계모임을 해도 멀리 흩어져 살면 친한 친구들 얼굴 1년에 한두 번 보기도 힘들잖아요. 우리 다섯 명은 매주 만나요. 폴락은 지역 문화에 이바지하겠다는 거창한 가치를 내세우기보다 우리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즐거운 모임이라니까요. 하하." 폴락이 즐거운 이유가 바로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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